이현우기자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최근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의 요청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 및 지명에 대한 표기가 바뀌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그동안 '키예프'로 표기됐던 우크라이나의 수도는 '키이우'로 수정됐는데요. 키예프는 러시아식 표기방식이라 우크라이나식 표기방식인 키이우로 변경이 된 것이죠.
사실 현재까지 알려진 우크라이나의 지명들은 우크라이나가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19세기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 알려진 지명들이라 대부분 러시아 표기법에 따랐었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해당 문제를 인식해 최근 지명 표기법 변경을 위한 켐페인을 벌이던 와중, 러시아의 침공이 발발하면서 전세계적으로 표기 변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죠.
5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미국을 시작으로 서방국가들과 언론들도 '키예프(Kiev)'에서 '키이우(Kyiv)'로 표기를 대거 변경하고 있습니다. Kiev는 러시아식 발음을 영어로 바꾼 것이고, Kyiv는 우크라이나식 발음을 영어로 바꾼 것이기 때문에 표기를 변경하고 있다는 것이죠.
영국 BBC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가 처음 도시와 지명표기를 러시아식에서 우크라이나식으로 바꾸기 시작한 것은 1995년이었다고 합니다. 1991년 옛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가 독립하면서 본격적인 '자기말 찾기' 운동이 시작된 셈인데요. 지난 2018년부터 대외 공관들에게 표기 변경을 요청하는 켐페인도 시작이 됐습니다.
특히 키이우의 지명표기에 상당히 민감한 이유는 도시명 자체가 우크라이나의 건국영웅으로 알려진 '키이'라는 인물의 이름이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키이우는 중세 동슬러브어로 '키이의 성'이란 뜻으로 불린 '키이에우 고르두(Kyjev gordu)'라는 단어의 줄임말인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에서는 우크라이나어가 러시아어와 별개의 말이 아닌 '사투리'에 불과하다며 의미를 격하시켜왔다고 하는데요. 여기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간의 역사적인 정통성 분쟁이 함께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해 현재 러시아 정부 수뇌부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역사의 일부이며,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지난달 21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국영방송을 통해 가진 대국민 담화에서 "우크라이나는 우리에게 단순히 이웃 국가가 아니라 러시아 자체 역사와 문화, 정신세계의 분리될 수 없는 일부"라며 "현대 우크라이나는 전적으로 러시아, 더 구체적으로는 볼셰비키, 공산주의 러시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죠.
현재 푸틴 정권은 우크라이나를 아예 '소러시아'라 부르며 처음부터 러시아 역사의 일부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벨라루스 3국에서 역사가 시작된 지역으로 인식하는 땅이죠. 실제 역사 기록에서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역에 걸쳐 처음 만들어진 도시는 키이우로 알려져있습니다. 키이우가 서기 9세기경 건설된 이후, 점차 인구가 늘어나면서 러시아와 벨라루스 일대에도 도시가 만들어졌기 때문인데요. 러시아에서도 이 시기를 '키예프 루스'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후 3국의 역사가 갈라진 것은 13세기 몽골족의 침입 이후로 알려져있습니다. 몽골족의 침입으로 키이우는 완전히 파괴돼 몽골족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았고, 러시아의 모태가 된 모스크바 공국은 몽골족을 피해 북쪽으로 도망쳐온 난민들이 주축이 돼 세웠다고 알려져있죠. 실제로 선후관계를 따지면, 우크라이나 지역의 문화가 러시아 문화의 모태가 된 셈입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정통 키예프 루스의 역사가 모스크바 공국을 통해 러시아로 이어졌다고 주장하고 있죠. 이번 침공으로 양국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면서 양국간 역사분쟁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습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