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형기자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바야흐로 '우주 경제'가 활성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위성 인터넷망을 연결하거나, 과학 탐사선을 쏘아 올려보내는 것을 넘어 '우주 궤도 공장'을 지으려는 시도까지 이뤄지고 있습니다. 사실상 중력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데다 진공 상태인 우주는, 지구에선 다루기 힘든 극히 민감한 물질들을 제어하는 데 안성맞춤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주 산업은 과거 지상에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다양한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가디언', '비즈니스 라이브' 등 영국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영국에 본사를 둔 우주 개발 기업 '스페이스포지'는 최근 1020만달러(약 121억원) 규모의 시리즈 A(신생 벤처 기업의 첫 번째 주요 투자 단계) 투자금을 유치했습니다. 유럽 우주 관련 벤처 기업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금액입니다.
지구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 안에 작은 제조 시설을 집어넣어 일종의 '궤도 공장'을 만들겠다는 이들의 계획은 영국 정부, 유럽 우주국(ESA), 우주 전문 벤처 캐피털 '스페이스펀드' 등 다양한 민·관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내년 중 2회 발사 예정인 스페이스포지의 제품 '포지스타'는 큰 오븐 크기의 인공위성으로, 내부에 로봇팔 등 작은 제조 시설이 탑재돼 있습니다.
포지스타는 로켓에 실려 지표면으로부터 약 480km 떨어진 우주 궤도에 안착할 예정입니다. 이후 태양광 패널을 펼쳐 전력을 공급받으면서 약 6개월 동안 제조 프로세스를 가동한 뒤, 완성된 물품을 보관한 채 지구로 회수됩니다. 포지스타는 특히 반도체, 의약품, 합금 등을 제조하는 데 이용될 예정입니다.
지구가 아닌 우주에서 물품을 제조하면 어떤 이득이 있을까요. 우리가 사는 지구는 다양한 환경 요인의 영향을 받습니다. 중력, 습도, 온도, 대기질, 심지어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도 시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대부분의 물질은 이런 지구 환경을 견딜 수 있지만, 극히 민감한 일부 단백질이나 금속, 반도체는 이를 버티기 힘듭니다. 일례로 화이자·모더나 등 제약기업에서 만든 메신저리보핵산(mRNA) 코로나19 백신은 상온에서 금세 녹아 사라지기 때문에 항상 극저온 냉동시설 안에 보관되어야 합니다. 이와는 달리, 우주는 중력이 거의 없고 진공 상태이며, 온도도 매우 낮습니다.
이 때문에 특수한 물질을 취급하는 공장은 인위적으로 우주 환경을 모방하는 진공실이나 극저온 시설을 만들어 대비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설은 막대한 비용이 들고, 전력 소모도 커 유지도 힘듭니다. 스페이스포지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차라리 우주에 공장을 쏘아 올려보내자는 아이디어를 실험하려는 겁니다.
이와 관련, 스페이스포지의 공동 창업자인 조시 웨스턴은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우주 공간에서 만든 합금은 지구에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수준의 순도나 품질을 달성할 수 있다"며 '우주 제조업'의 가치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스페이스포지의 사례처럼 지구에서 불가능했던 일의 해법을 우주에서 찾는 기술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같은 추세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우주 산업 규모에서도 나타납니다.
비영리 우주기구 '미국 우주재단'이 발행한 '스페이스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우주 경제 규모는 4470억달러(약 530조원)에 이르렀습니다. 불과 5년 전인 2015년보다 55%가량 늘어났습니다.
막대한 규모만큼이나 종류도 다양합니다. 이미 자동차, 스마트폰 등에도 쓰이고 있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부터 위성 TV 서비스, 인공위성을 통한 해상·험지 모니터링 서비스 등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추진하는 군집 위성 인터넷망인 '스타링크', 비슷한 기술을 이용한 영국 '원웹' 등이 경쟁을 벌이면서 더욱 성장세가 가팔라지고 있습니다. 스페이스포지의 우주 제조업 또한 점차 늘어나는 우주 경제 생태계의 한 단면입니다.
우주 산업이 활성화된 가장 중요한 계기는 '발사체 혁신'입니다. 지난 수십년에 걸쳐 인공위성을 지구 바깥으로 쏘아 보내는 로켓의 제조 및 운영 비용이 크게 낮아졌고, 덕분에 우주에 기반을 둔 기업체들이 더욱 활발한 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됐습니다.
발사체 혁신의 대표적 사례는 머스크 CEO의 '스페이스X'가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재사용 로켓을 상용화해, 로켓 발사 비용을 극적으로 끌어 내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웬디 위트맨-콥 옥스퍼드 정치과학대 교수가 교양 매체 '더 컨버세이션'에 낸 기고글에 따르면, 지난 1970년부터 2000년까지 우주 로켓 발사 비용은 킬로그램(㎏)당 평균 1만8500달러(약 2195만원)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페이스X의 팔콘9 재사용 로켓이 상용화된 뒤로 이 비용은 2750달러(326만원)까지 떨어졌습니다. 위성을 우주로 보내는 비용을 무려 7배 가까이 낮춘 셈입니다.
최근에는 기술 발전 덕분에 3D 프린터로 로켓을 대량 생산하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일례로 스코틀랜드의 로켓 스타트업 '오벡스'는 지난달 로켓 모터와 연료 펌프를 단 한 번에 생산할 수 있는 3D 프린터 기술을 공개했습니다. 기술자들이 직접 부품을 용접하거나 관을 연결할 필요 없이, 레이저 3D 프린터가 '그려내듯이' 로켓 엔진의 몸통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미국, 영국 등 기존 우주기술 강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우주 경쟁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한국 또한 지난 10월21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를 띄웠고, 3단 엔진이 조기에 종료됐다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단계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이 외에도 아랍에미리트(UAE), 브라질, 이란 등 여러 나라들이 로켓 개발이나 독자적 위성 기술 개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더욱 치열해지는 경쟁과 발전한 자동화 기술에 힘입어, 로켓을 만들고 발사하는 비용은 앞으로도 꾸준히 감소할 전망입니다. 또 이런 추세가 지속될수록, 우주 경제는 더욱 활기를 더해갈 것으로 보입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