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이야기]상속세의 존재 이유

안창남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

최근 모 재벌 회장의 사망과 관련해 상속세에 대한 여러 논쟁이 일고 있다. 상속세가 너무 많으면 상속받은 기업(지분)을 매각해야 세금을 낼 수 있고, 이렇게 되면 경영권이 위협받으며 이는 국가 경제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 제119조는 국가로 하여금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어서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분배의 의미가 상실될 정도로 개정할 수도 없다. 헌법재판소도 상속세 제도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의 헌법이념에 따라 재산상속을 통한 부의 영원한 세습과 집중을 완화해 국민의 경제적 균등을 도모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라고 해석하고 있다(96헌가19). 상속세는 청년층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그 '출발점의 평등'을 지향한다. 100m 달리기 경주에서 누구는 출발선에 서 있고, 누구는 벌써 90m 지점에 가 있다면 이는 헌법에서 말하는 '공평'의 관점과는 한참 먼 얘기가 된다. 공평이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보자는 것으로 상속재산이 많으면 그만큼 세금 부담이 높아야 함을 의미한다.

상속인이 받은 상속재산은 무상으로 받은 소득이다. 이를 소득으로 봐 소득세로 부과하는 나라가 있고, 우리나라처럼 상속세로 부과하는 나라도 있으며 피상속인이 상속인에게 양도한 것으로 봐 양도소득세로 과세하는 나라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대부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상속받은 재산에 대해 과세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외국에 상속세 제도가 없거나 상속세율이 낮으므로 우리나라 상속세를 폐지 또는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단견일 뿐이다.

미국 제23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929년 대공황 이후 심화되는 경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누진유산세(Revenue Act of 1935ㆍ최고세율 75%)를 도입하기 위한 의회 연설에서 "우리나라를 세운 선조들이 정치적 힘의 세습을 거부했듯 오늘 우리는 경제적 힘의 세습을 거부한다"고 역설했다. 그 나름의 공평의 잣대를 내세워 국민을 설득한 것이다.

최근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그의 저서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 진출 출발선에 서 있는 청년층에게 그 나라 성인의 평균 재산에 60%에 상당하는 금액(1인당 12만유로ㆍ약 1억6000만원)을 자본금으로 지급하자는 주장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소득 불균형이 더 심화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사회적 화합을 이루기 어렵다고 본다.

불평등은 사회 결속력을 약화시키고 구성원의 지위 불안과 스트레스를 심화시킨다. 그렇다고 모두가 같은 평형의 아파트에서 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눠줘 저마다 쓸 만큼'의 혜택을 주는 재원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절대적 평등이 아닌 상대적 평등은 지속돼야 한다. 부자가 누리는 부와 재산에는 가난한 자들의 눈물과 한숨도 섞여 있다. 나라 살림 밑천인 세수입의 상당 부분은 기업에서 나온다. 그래서 기업이 국제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세제가 운영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경청할 만하다. 반면 기업의 지배 구조 안정과 상속인이 부담하는 상속세는 구별돼야 한다. 상속세 납부로 흔들릴 수 있는 기업 지배 구조 문제는 세법 차원이 아닌 상법에서 차등의결권제도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상속인이 부담하는 상속세의 연부연납 기간도 현행 최고 20년을 상속세액에 따라 차별적으로 좀 더 늘려줄 필요는 있다고 본다. <안창남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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