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윤기자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조선 후기 시인으로 이름을 날린 김득신은 자타가 공인하는 독서왕이었다. 그가 스스로 평생 읽은 책을 기록한 독수기(讀數記)에 따르면 '사기' 백이전은 1억1만3000번, 노자전·분왕·벽력금 등은 2만번 읽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어 "장자, 사기, 대학, 중용은 읽은 횟수가 1만번을 넘지 않았으므로 적지 않는다"며 겸손 어린(?) 자랑까지 적을 정도였다. 그의 서재 이름은 '억만재'. 1만번은 읽어야 책을 알고, 1억번은 읽어야 책을 읽었다고 생각한 김득신의 다독 뒤엔 자신의 결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숨어있다. 김득신의 조부는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의 명장 김시민이고, 부친은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김치로 스무살에 문과 급제한 당대의 엘리트였다. 명문가 자제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태어난 김득신은 어린 시절 천연두를 앓아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뇌 손상을 입어 지능이 다소 떨어졌다고 전해진다. 10세 때 간신히 글을 깨우쳤으나 돌아서면 잊는 수준이었고, 20세 때 처음 글을 썼을 정도였다. 그러나 아버지 김치는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이 스물에 첫 시를 쓰자 덩실덩실 춤을 추며 감격하던 아버지는 "득신은 아둔하니 공부를 포기시켜라"는 주위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을 지지했다. 김득신 역시 그 든든한 지원에 힘입어 이해되지 않는 책을 읽고, 읽고, 또 읽으며 공부에 매진해 39세 때 소과에 합격하고, 뒤이어 59세 때 비로소 대과에 급제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뇌절'은 만화 나루토에 등장한 기술에서 유래한 단어로, 똑같은 말 또는 행동을 반복해 상대방을 질리게 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일생을 독서를 향한 뇌절로 후세까지 회자된 김득신의 집념은 오직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포기하지 않는 데서 비롯됐다. 몇 차례의 좌절에도 쉽게 포기하는 이들을 향해 김득신은 이런 조언을 건넨다. "학문에 힘쓰는 자는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 데 달렸을 뿐이다.(又勉學者無以才不猶人自晝也. 莫魯於我.終亦有成. 在勉强而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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