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한다면서 고기 맛은 왜 내나' '비건 버거'에 쏟아지는 비난

롯데리아, 지난 13일 식물성 버거 출시
국내 채식 인구, 150만~200만 추정
일부 누리꾼 "비건이면 대체육류도 소비하면 안 돼" 조롱
전문가 "집단주의 문화, 다른 생각을 가진 집단에 대해 무조건적 비난하기 때문"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사진=게티이미지

[아시아경제 김가연 기자] "비건 버거를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비건 식단에 대한 선택권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대학생 A(24) 씨는 스스로를 채식주의자라고 소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A 씨는 "채식을 단순히 편식으로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타인의 신념과 선택을 그렇게 깎아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제 경우에는 대학 입학 후 여러 활동을 하면서 동물권에 관한 생각을 계속하게 됐고, 동물권과 환경보호를 목적으로 채식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채식을 한다고 밝히면 웃음거리가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자주 있다. 제가 타인에게 해를 끼친 게 없는데도, 단순히 채식한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싶지는 않다"라면서도 "국내에서도 다양한 비건식이 나오면 사람들의 인식도 어느 정도 개선되지 않겠냐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패스트푸드 업체 '롯데리아'가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 최초로 식물성 버거를 출시했다. 롯데리아 측은 "NOT BEEF, BUT VEEF", "고기 없이 고기 맛이 나는 기적" 등의 문구를 내걸고 홍보에 나섰다. 해당 버거는 식물성 패티, 빵, 소스로 만들어졌으나 매장 조리 시 교차오염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소비자들은 "국내서도 채식 식단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며 기대를 표하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채식인데 왜 고기 흉내 낸 것을 소비하냐"며 조롱을 쏟아냈다.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대체 육류를 소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동물권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국내서도 비거니즘(veganism)이 확산하고 있다. 비거니즘은 채식주의를 통칭하며, 다양한 이유로 동물성 제품을 섭취하지 않는 식습관 및 그러한 철학을 의미한다. 넓은 의미로는 가죽제품 등 동물 화학 실험을 하는 제품, 동물성 제품 소비를 지양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이같은 소비문화가 확산하면서 국내 비건 인구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2월 채식주의자 커뮤니티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는 150만 명에서 200만 명 사이로 추산된다. 연합 측은 채식을 선호하거나 지향하는 인구의 수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일각에서는 채식을 두고 여전히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채식한다면서 고기 맛 좋은 건 아냐", "비건이면 풀만 먹어야지 대체 육류같이 고기 흉내 낸 건 다 먹으려고 한다", "식물도 고통을 느낄 텐데 먹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편식한다고 하기 창피하니 비건이라고 하는 것" 등 조롱을 이어갔다.

직장인 B(27) 씨는 "비건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비난을 쏟아내는 것 같다"면서 "비건은 단순히 맛 때문에 육류나 유제품 섭취를 거부하는 게 아니다. 맛 때문에 편식하는 것이라면 빵 하나를 살 때도 꼼꼼히 성분을 살필 필요가 없지 않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B 씨는 "개인적으로 채식을 하기 전에 고기를 굉장히 좋아했다"면서도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가 즐겁게 먹는 것 보다 그 과정에서 착취·학대당하는 동물들을 소비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주변에 이야기를 나눠보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완전히 채식을 하지 않더라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비건식을 하려는 사람도 많은데 인터넷만 들어가면 그렇게 비난이 쏟아진다"면서 "대체 이해가 안 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는 집단주의 문화에서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체를 공고히 하기 위해 다른 집단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집단 간 갈등"이라면서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무조건 적으로 비난을 하고 본다"고 꼬집었다.

곽 교수는 "'우리 집단이 우세하다'고 함으로써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나는 더 좋은 집단에 속해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집단을 폄하하는 것"이라며 "채식도 마찬가지다. 비난의 대상이 되는 상대 집단 또한 그 비난에 대해 반박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점차 갈등이 심화한다"고 설명했다.

김가연 기자 katekim221@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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