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신원기자
[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1851년 뉴욕 이스트빌리지 13번가의 작은 동네 약국에서 출발한 미국 스킨케어 브랜드 '키엘(Kiehl's)'. 컬럼비아 약대를 졸업한 존 키엘(John Kiehl)이 치료용 연고나 의약용 토너 등을 제조해 판매하던 '키엘 파마시'가 키엘의 모태다. 현재는 전 세계 39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울트라 훼이셜 크림 등 키엘의 대표 제품들은 전 세계서 15초에 1개씩 판매될 정도로 스킨케어 업계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키엘은 '브룬스윅 약국'에서 시작됐다. 1894년 존 키엘이 브룬스윅 약국을 인수해 이름을 '키엘 파마시(약국)'로 바꾸고 조제 약품을 팔기 시작했다. 천연 허브와 토닉 성분의 연고 등을 직접 만들어 판매했다. 피부에 자극적이지 않은 순한 성분에 효과도 탁월해 금세 입소문을 탔다.
1921년에는 존 키엘이 은퇴하면서 그의 조수였던 어빙 모스(Irving Morse)가 약국을 물려받았다. 키엘을 탄생시킨 건 존 키엘이지만 어빙 모스는 키엘 약국을 거대 화장품 브랜드로 성장시킨 장본인이다. 어빙 모스는 조제한 약과 허브, 꿀 등에 키엘 상표를 붙여 판매했다. 이때 출시한 '러브오일'은 현재 키엘의 대표 상품 중 하나로 꼽히는 오리지널 머스크 오일의 시초다.
특히 어빙 모스는 창업자인 존 키엘의 철학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도입했다. 존 키엘은 '고객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시했다. 때문에 구매 전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찾을 수 있도록 테스트해볼 수 있는 운영방식을 고수했다. '사용해 보시고 구매하세요(Try before you buy)'라는 '샘플 서비스'의 기반이 됐다. 한 해 동안 고객들에게 주는 샘플만 1억개가 넘는다.
'정보 제공 패키징'도 존 키엘의 철학에 기반했다. 키엘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은 패키지를 고수하고 있는데 바로 고객들이 제품의 설명부터 전체 성분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제품 전면에 라벨을 부착하는 것이다.
또 전 세계 어디를 가든 키엘 매장 직원들이 입고 있는 '하얀 가운'도 같은 맥락이다. 약국이 모태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하얀 가운을 입은 직원들은 평범한 직원들이 아닌 전문 상담원이다. KCR(Kiehl's Customer Representative)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매장에 방문한 고객에게 1:1 맞춤 상담을 통해 피부 고민에 맞는 제품을 제안하는 역할을 한다. 키엘은 철저한 교육과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 KCR을 선발하고 있다.
키엘은 화장품을 제조할 때 3가지 원칙을 강조한다. 무향·무색소·최소 방부제의 원칙으로 화장품을 만든다. 약국에서 시작된 화장품인 만큼 약을 제조한다는 마음으로 만든다. 실제로 3대 계승자였던 어빙 모스의 아들 아론 모스(Aaron Morse)는 미국 최초의 불소 치료법을 발견한 학자였으며, 미국 최초의 페니실린 제조업체였던 제약회사 모스 연구소도 아론 모스가 창설했다. 이런 그의 경력은 훗날 키엘의 탄탄한 제품력의 뼈대가 됐다.
또 키엘에서 제조하는 스킨케어부터 바디케어, 헤어케어까지 모든 화장품은 알프스 산에서 공수한 물, 로즈마리 허브, 장미꽃잎 등 '천연 식물'만을 사용한다.
특히 키엘의 베스트셀러인 울트라 훼이셜 크림은 올리브와 아보카도 등 식물성 오일을 베이스로 하며 빙하와 사막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이 함유된 보습 크림 제품이다. 광물성 오일이 아닌 식물 추출물을 함유해 2005년에는 그린란드 원정대가 이 크림을 보습용으로 사용하면서 더욱 입소문을 탔다. 국내에서도 가장 많이 판매되는 수분크림으로 꼽히며 2005년 출시 이후부터 지금까지 각종 뷰티 어워드에서 30관왕 이상을 차지한 제품이기도 하다.
이렇게 제품을 강조하는 게 키엘만의 운영 방식이다. 흔한 TV 광고나 홍보, 유명 모델을 기용하지 않는 이유도 모두 '제품'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키엘은 창업자의 철학과 더불어 한 가지 강조하는 철학이 더 있다. 바로 '기업의 이윤은 반드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철학이다. 지난 2011년 키엘은 브랜드 설립 160주년을 맞이해 기부 사이트 '키엘 기브스(Kiehl’s Gives)'를 오픈했다. 에이즈 연구부터 성소수자, 환경 문제, 아동 복지 등 4가지 측면의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대표 제품 울트라 훼이셜 크림은 매해 유명 연예인이나 아티스트들과 콜라보레이션(협업)을 통해 한정판 디자인의 패키지를 내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판매 수익금 일부가 특정 계층이나 캠페인에 기부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오래된 나무 살리기' 캠페인이 진행되기도 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판매된 울트라 훼이셜 크림 점보 한정판 제품의 판매 수익금은 한국의 유서 깊은 나무들을 보호하는 데 쓰였다.
또 환경 보호를 위해 '최소 포장, 최대 재활용' 원칙으로 패키지를 만든다. 소비자들이 사용한 키엘 정품 공병을 매장으로 가져오면 수량에 따라 여행용 샘플 또는 정품을 증정하는 '공병 수거 캠페인'은 전 세계 키엘 매장에서 365일 진행하고 있는 환경 캠페인이다. 이 공병은 친환경 섬유로 재활용되는데 이 섬유는 KCR 직원들이 입는 하얀 가운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