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화기자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데 사실일까요? 최근 로봇 관련 가장 화제가 됐던 소식은 "2030년까지 로봇이 2000만개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영국의 경제분석기관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로봇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보고서입니다.
그동안 로봇이나 기계가 인간을 밀어내고 일자리를 차지할 것이란 과학자들의 주장은 적지 않았습니다. 지구촌 전체가 불황에 빠지면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불안감도 함께 커진 것입니다. 이런 불안감은 거의 사실로 굳혀지는 분위기입니다. 옥스포드이코노믹스의 보고서는 그동안의 학설들을 재확인 시켜준 것이지요.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인류는 기계의 힘을 이용해 산업의 생산성을 높여 왔습니다. 끊임없는 혁신으로 늘어나는 인구에도 힘든 일자리는 줄이고, 보다 나은 일자리와 더 좋은 직업을 점점 늘려왔습니다. 자연히 삶의 질도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정보화시대로 접어든 이후 바뀌게 됩니다. 일자리는 빠른 속도로 고성능의 기계와 로봇(AI 등)에게 빼앗기고 있습니다. 로봇이 비행기를 조종하고, 암을 진단하고, 주식거래도 합니다. 심지어 기사도 씁니다. 일자리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있는 현실이지요.
1973년 이후로 미국에서 새로운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었습니다. 2000년 이후에는 미국에서 전체 일자리 수가 거의 증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경제활동으로 국민들이 그나마 풍족한 삶을 유지하는 국가들의 경우 매월 15만개 정도의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1979년 미국의 자동차회사 GM은 80만명의 직원들을 고용했고 110억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2012년 구글은 5만8000명의 직원으로 140억 달러를 벌었지요. 자동차 산업의 혁신이 인터넷 산업의 혁신에 비해 강도가 약했던 것일까요? 인터넷의 발달은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냈고, 생산성은 10배 이상 높아진 것입니다.
자동차산업이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고,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면서 인류의 삶의 방식과 도시의 구조를 바꿔놓았습니다. 그러나 자동차산업의 혁신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전기·수소자동차도 예전만큼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IT 전성시대를 구가했던 21세기 초반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예전에 비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긴 했지만 그 일자리의 숫자가 충분하진 못했지요. 인터넷이 사장시킨 산업이 많았던 반면, 인구는 더 늘어나 더 많은 일자리를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한 편을 만들 때 수만명의 그래픽 작업 등에 동원돼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했습니다. 2004년 블록버스터는 8만4000명의 직원들이 60억 달러를 벌어들여 정점을 찍습니다. 10여년 뒤인 2016 넷플릭스가 불과 4500명의 직원들로 90억 달러를 벌어들입니다.
생산성의 혁신은 놀라울 정도였지만, 이제 혁신도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좋은 직업을 만들고, 비용은 줄어들었지만 일자리는 더 이상 늘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혁신과 사물인터넷이 일상화된 정보화 시대라고 해서 새 일자리가, 부족한 일자리가 척척 만들어 낼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차라리 로봇에게 새 일자리 만드는 방법을 부탁하는 것이 나을까요?
인류가 진화해온 만큼 로봇도 진화합니다. 로봇이 할 수 없는 전문화된 분야 만큼은 인간이 점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알파고'의 등장으로 점점 옅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영리한 로봇들은 인간보다 배우는 속도도 빠릅니다. 세상이 정보화되면서 쉽게 학습할 수 있는 로봇은 복잡하고, 전문화된 일을 하는 것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지요.
게으른 인간과 달리 로봇은 자동 업데이트만으로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니까요. 솔직히 인간과 로봇의 경쟁에서 인간이 점점 밀리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로봇이 해낼 수 없는 분야가 반드시 생기겠지요. 그 적은 분야에 수많은 인간이 경쟁해야 하는 것입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