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광주, 아직 생생한 기억...5.18 기념식 참석한 日 원로기자들

80년대 서울 특파원으로 민주화 운동 취재한 원로기자들
최루탄 냄새, 무장경찰 모습 아직도 생각나
30년 만에 다시 온 광주 "시민들이 갈망하던 민주화 완성됐다"

야스오 요시스케(72) 전 교도통신 기자(왼쪽에서 첫번째)가 18일 국립 5.18 묘역에서 희생자 묘비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전진영 기자)

[아시아경제 전진영 수습기자] "39년만에 온 광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네요."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을 취재했던 일본 원로 기자들이 5.18 민주화운동 39주기를 기념해 다시 광주를 찾았다. 한국에 특파원으로 파견됐던 원로기자들은 당시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들은 "그토록 시민들이 갈망하던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 같다"면서 "민주화 과정을 제대로 겪지 못한 일본 대비 한국이 부럽다"고도 입을 모았다.

18일 오전 광주 국립5.18 묘역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만난 니시지마 신지(62)씨는 "아직도 최루탄 냄새가 생생히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옆 사람을 따라 눈 밑에 치약을 발랐지만 매운 연기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니시지마씨는 일본 TBS재직 당시 서울 특파원으로 파견돼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취재했다.

5.18 희생자들이 잠든 망월동 묘역에서 만난 전 교도통신 기자 야스오 요시스케(72)씨는 "예전에는 이 묘역에도 경찰들이 곳곳에서 감시하고 있었다. 삼엄한 분위기에 시민들은 '광주'라는 단어만 꺼내도 순식간에 입을 닫았다"고 말했다. 이어 "몸에 불을 붙이고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학생들, 경찰에 끌려가서 맞는 학생들의 모습을 모두 지켜 봤다"고 말했다.

이들은 영화 '택시 운전사' 실존인물인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펜터의 이야기를 꺼내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당시 신군부는 광주 사태가 해외로 알려지는 것을 우려해 해외 언론의 한국 파견을 각사당 1명으로 제한한데다 외신기자들을 삼엄히 감시했다. 홋카이도 신문의 키타 요시노리(71)씨는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는 전남도청을 한참동안 바라보다 "사실상 당시 한국 상황을 해외에 전한 창구 역할은 대부분 한국과 가까운 지역인 일본 언론들이었다"면서 "힌츠펜터도 도쿄 특파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한국-일본-서양 순으로 광주 항쟁 관련 정보가 확산됐다"고 덧붙였다.

니시지마씨는 "일본에도 학생운동이 있었지만 한국처럼 모두가 독재정권에 맞서 항거하는 일은 없었다"면서 "일본의 민주주의는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 어느 누구도 아베 신조 총리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자유롭게 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키타씨는 "일본은 시민들이 아래서부터 직접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과 달리 패전 이후 미국에 의해 민주화가 이뤄졌다"면서 "일본 국민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 일본에서 택시운전사가 크게 흥행한 이유도 결국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 원로기자들은 최근 경색된 한일관계 원인도 "현 (일본)정부가 진실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야스오씨는 "새 일왕을 맞았지만 아베 총리가 역사 속 진실을 거부한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 될 것"이라며 "부정만 할 것이 아니라 진실과 대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진영 수습기자 jintonic@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편집국 전진영 수습기자 jintonic@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