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표기자
[아시아경제 김동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대화의 중재자·촉진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지만 하노이 노딜 이후 그 역할이 발휘될 공간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해외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의 의지와 노력을 평가하면서도 그 효과와 방법에 대해서는 인색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업적을 위해 남북대화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도 나왔다.
조나단 폴락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23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아산플래넘 2019'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제발 나 좀 만나줘'라고 빌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투영해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문 대통령이 받는 정치적 압박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문 대통령은 (남북 대화에) 덜 필사적으로 보일 필요가 있다. 지금은 너무 안달하는 느낌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남북간의 권력관계가 극심한 불균형 상태에 있다고 봤다. 남은 북을 만나길 원하지만, 북은 남을 신경도 쓰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폴락 연구원은 "현재 상황에서 북한은 한국을 중요한 플레이어라고 전혀 보질 않고 있다"면서 "특히 핵무기에 관해 이야기를 할 당사자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나 중국 등 초강대국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 위원장의 지난 12일 시정연설을 언급하며 "그런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 메시지였다"고 설명했다.
수미 테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도 문 대통령의 중재자·촉진자 역할이 현 상황에서 공간을 찾기 어렵다고 봤다. 그는 "미국도 북한도 모두 (기존의 입장을) 포기하지 않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싶다"면서 "문 대통령이 1년간 중재를 위해 노력을 했지만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4차 남북정상회담 성사도 쉽지 않을 거라 내다봤다. 그는 "(현 상황에서) 회담이 열려도 남측이 북측에 줄 수 있는 선물이 없다"면서 "회담이 개최되더라도 '협상장에 돌아오라'는 말 밖에 들을 게 없는 김 위원장이 굳이 현 시점에서 문 대통령을 만나고 싶어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한국이 미국의 의지와 관계없이 개성공단을 다시 재개한다거나 한다면 (북측의 입장이) 달라질 지도 모른다"고는 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아울러 한국이 남북대화에 집중하느라 한미동맹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날 행사의 기조연설을 맡은 제임스 스타인버그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한국 정부에 "남북 간 긴장 완화도 중요하지만 한미동맹이 종이서명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 안보동맹이 가져오는 안정화 역할과, 한미동맹은 반드시 군사적 신뢰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철저히 한미동맹에 기반해야 함을 강조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도 "(비핵화와 관련해) 미국과 통일된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