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증인 현직판사 '임종헌 지시로 문건 작성…부담 느껴'

"의무 없는 일 하게 하지 않았다"는 주장과 상반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USB 속 문건 8600여건도 증거 채택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9.4.2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이설 기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처음 증인으로 출석한 현직 법관이 그의 지시에 따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제기된 문건을 작성했다고 증언했다. 또 이 같은 문건을 작성하면서 부담감을 느꼈다고도 토로했다.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 전 차장의 속행 공판에는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부장판사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법원행정처에서 기획조정심의관으로 근무하며 당시 기획조정실장이던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고 각종 재판 거래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농단 관련 재판에서 현직 법관이 증언석에 앉은 것은 정 부장판사가 처음이다.

정 부장판사는 이날 상고법원 추진과 관련한 국회 동향 보고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선고 이후 각계 동향 파악 보고서, 2014년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정지 사건과 관련한 내용을 검토한 문건 등을 작성했다고 시인했다.

그는 특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행정력을 집중했느냐"는 질문에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의 비서실에 근무했던 성창호 부장판사로부터 양 전 대법원장의 생각을 전달받았다고 진술했다. 정 부장판사는 당시 성 부장판사가 심의관들에게 각자 하는 업무를 보고하도록 독촉했고, 법원행정처의 실·국을 수시로 방문했다고 밝혔다. 또 심의관들과의 회의 석상이나 사석에서 대법원장의 생각을 전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정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으로부터 청와대로서는 전교조 사건이 최대 관심사라 만약 재항고가 기각되면 역풍이 불 수 있고 사법부에 대한 보복이 이뤄질 수 있다는 배경 설명을 들었다"며 "그래서 제게 재항고 결정으로 구술해준 것으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전교조 문건에는 대법원이 고용노동부의 재항고를 받아들여 파기환송하는 것이 청와대와 대법원 모두에 '윈윈'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정 부장판사는 이날 검찰이 "조사를 받을 때 '사법부 권한을 남용하는 부분이 많이 포함됐고, 비밀스럽게 작성해 부담을 느낀 것이 사실'이라고 진술한 것이 사실이냐"고 묻자 정 부장판사는 "그렇게 진술한 적 있다"고 답했다. 이는 "심의관들이 본연의 업무를 했을 뿐 의무 없는 일은 하지 않았다"는 임 전 차장 측 주장과는 상반된다.

이날 임 전 차장은 증인 신문 과정에서 여러 차례 끼어들어 검찰이 항의하기도 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재판부도 아닌데 마치 소송을 지휘하듯 이의를 제기한다"고 말했고, 재판부도 임 전 차장을 제지했다.

한편 이날 재판부는 임 전 차장 사무실에서 확보한 이동식저장장치(USB)를 증거로 채택해 관련 문건이 재판에 쓰일 수 있게 됐다. 앞서 임 전 차장 측은 검찰의 위법한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USB라 증거로 쓸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압수수색 절차에 문제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해당 USB에는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 8600여건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설 기자 sseol@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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