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파과(破瓜)/신미나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목사님이 말했는데손가락이 하나 없는언니의 머리는쓰다듬어 주지 않았다헌금함이 돌아오면우리는 헌금하는 시늉을 했다무슨 잘못을 했는지말해 보라고 했다콧등을 내려다봤을 뿐인데너희는 착하구나부끄러움이 뭔지 아는구나해바라기가 해를 원망하며노랗게 타들어 가고 있을 때고사리처럼 몸을 비틀며지렁이가 죽어 갔다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데,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가난한 자를 업신여긴다. 업신여기고 조롱하고 때로는 욕하고 두들겨 패고 내쫓는다. 물론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겠지만, 가난한 자를 경멸하는 것 또한 이젠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서 우리는 가난한 자를 추궁하고 나무라고 몰아세운다. 그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기어코 실토할 때까지. 그리하여 가난한 자가 가난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마침내 부끄러워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그에게 착하다고 부끄러움을 알게 되어 천만다행이라고 칭찬하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마치 소명을 다했다는 듯이 동전 몇 닢을 쥐여 주면서.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 채상우 시인<ⓒ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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