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반성과 배신과 당신/김승일

  반성은 불구의 몸을 움직여 본 적이 없다 자전하는 반성의 뒷면을 본 적이 없다 눈물 흘리는 반성은 문을 걸어 잠그는 반성은 반성을 만지작거린다 머리카락처럼 돋아나서 음모처럼 떨어지는 반성 볼트처럼 반성 쓰러지는 팽이처럼 반성 반성은 변기처럼 반성의 자식들을 질러 놓고 반성은 반성의 물을 내린다 반성은 붉은 확성기다 고성방가 고속 반성 고속 반성문을 휘갈기는 반성 눈을 감은 반성은 더 심각하게 반성한다 그러나 그것은 반성의 골탕 머리를 잘 쓰는 반성은 반성을 이용해 먹을 준비를 한다 (후략)  ■잘못을 했으면 반성을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반성을 하고 나서 다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다. 물론 사람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잠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 반성을 하기도 한다. 이 경우 반성은 단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반성은 정신의 위생학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자, 이제 반성을 했으니 내 지난 잘못은 사해진 것이고 그냥 잊고 살아도 된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달콤하여라. 그러나 "자전하는 반성의 뒷면"은 추악할 뿐이다. 진정한 반성은 자신의 잘못을 기어코 기억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자신의 죄 속을 거듭해서 사는 것이다.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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