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영화읽기]충무로는 왜 교도소에 집착할까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 컷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교도소는 최근 충무로의 단골 배경이다. '프리즌'에서 교도소 담벼락은 무의미하다. 밤이 되면 죄수들이 밖으로 나가 범죄를 저지른다. 이를 주도하는 정익호(한석규)는 권력실세. 왕좌에서 미끄러질 위기를 맞지만, 재소자로 위장한 경찰 송유건(김래원)의 도움으로 장기 집권한다. 수컷들의 우정과 비정함을 앞세워 돈과 권력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사회 시스템을 비판한다. '검사외전(2016년)'에서는 살인 누명을 쓴 검사 변재욱(황정민)이 실세다. 입소하자마자 자신이 잡아넣었던 재소자들에게 얻어터지지만, 검사로 일하면서 쌓은 노하우로 교도관들의 마음까지 사로잡는다. '쇼생크 탈출(1994년)' 속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과 흡사한 설정.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변재욱이 사기꾼 한치원(강동원)을 이용해 무죄를 증명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다룬다. 힘 있는 자들의 몰락으로 원망할 대상이 필요한 관객에게 통쾌함을 전한다.

영화 '프리즌' 스틸 컷

그런데 왜 굳이 교도소일까. 두 영화에서 행형과 교정처우를 시행하는 성격은 찾아볼 수 없다. 검사외전에서 교도소는 수의로 맵시를 부리는 패션쇼 무대이자 수컷들의 놀이터다. 프리즌에서는 정익호가 신선놀음하는 휴식처. 교도소장(정웅인)마저도 약점을 잡혀 옴짝달싹 못한다. 두 영화는 재소자들과 바깥세상이 연결되는 통로를 열어두고 교도소 안의 세계와 현실이 맞닿아있다고 한다. "인간이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모두 부조리의 상태에 있고, 부조리의 상황을 만든다"고 한 실존주의자 카뮈에 기댄 자위적 해석에 불과하다. 등장인물부터 엄연히 다르다. 비정한 세계의 깡패이거나 그렇게 변해가는 사람들. 마음 내키는 대로 폭력을 휘두르고, 이에 따라 서열을 정한다. 아무리 부정부패와 권력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고 해도 우리 사회의 모습을 투영하는데 한계가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교정시설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적이 거의 없다. 누구 하나 죽어도 신경을 쓰지 않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년)' 속 무법지대 후아레즈와 거리가 멀다. 그러나 충무로 속 교도관들은 늘 부정부패를 일삼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재소자에게 거리낌 없이 폭력을 행사한다.

영화 '검사외전' 스틸 컷

교도소가 계속 등장하는 건 정치사회적 이슈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데 따르는 부담 때문일 수 있다. 권력에 취한 정치를 꼬집고 한국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고발하고자 하는 감독들은 늘고 있지만 조폭과 정치, 언론, 기업의 관계를 모두 다룬 '내부자들(2015년)'처럼 정면으로 날을 세울 만한 용기가 없는 것이다. 교도소와 재소자들을 통해 우리 사회를 효과적으로 풍자한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검사외전이나 프리즌의 서사에 이런 요소는 전무하다시피하다. 미장센도 흔한 텔레비전 영상 등을 통해 각종 사고와 이슈가 빈번했던 시대를 상기시키는 수준에 머문다. 교도관이나 검사, 경찰에 대한 묘사도 다르지 않다. 대부분이 정장이나 제복만 갖춰 입었을 뿐, 수컷성이 강조된 조폭이다. 편을 먹고, 패를 가르는 싸움을 거듭하는 '친구(2001년)' 이전의 조폭영화에서 돌아왔다.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스틸 컷

이런 흐름은 앞으로 더 심해질 수 있다. 오는 17일 개막하는 칸국제영화제에서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다. 이 영화에서도 교도소는 수컷들의 비정함과 우정을 부각하는 장소에 불과하다. 권력 실세 재호(설경구)가 왕좌를 지키려고 살인을 저지르는가 하면, 재소자로 위장한 경찰 현수(임시완)와 우정을 쌓는다. FBI요원 조 피스톤(조니 뎁)이 마피아로 위장해 벤자민 루지에로(알 파치노)에게 다가가는 '도니 브래스코(1997년)'와 똑같은 서사다. 도니 브래스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이 세계의 절반을 교도소에서 펼친다. 재호와 현수가 왕좌를 탈환하고 함께 축배를 들면서 의형제처럼 가까워진다. 변성현 감독은 이 신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처럼 그려놓았다. 조폭의 족보를 종교적으로 접근하는 카메라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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