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성호 기자]23일 저녁 대선 후보 TV 토론을 보는 것은 곤욕이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일침이 그래서 시원했다. 그의 말대로 초등학생들 말싸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개인적으로는 '과거와의 단절'을 올바로 읽지 못하는 후보들의 '문맹'이 가장 답답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지속적으로 송민순 쪽지(2007년 정부의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전 북한 반응을 담은 문건)를 놓고 집요하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물고 늘어졌다. 문 후보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미래를 보자며 왜 자꾸 과거사를 들먹이고 있냐"는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문재인 후보가 적폐청산을 선거 캐치프레이즈로 들고 나온 마당인데 이런 반박은 어색하다.과거와의 단절을 이야기하지만 옛일을 되새김질하지 않고 미래를 논할 수 없다."전에 있던 것도 다시 있게 될 것이며, 이미 한 일도 다시 할 게 될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도다." 성경 전도서 1장에 나온 구절이다. 2000여 년 전에 이미 선조들은 과거와의 단절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았는데 우리는 '싹쓸이'로 과거를 지우려 한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다.과거는 지우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단절해야 하는 '교훈'이다. 나쁜 옛일에 치를 떨며 차라리 그런 일이 기억 속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심리는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는 쉽게 떠오르는 사건이 실제보다 더 흔히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출퇴근 때 교통사고 당할 확률이 훨씬 높은데 우리는 '테러'라고 하면 언제든 우리 주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가용성 추단법이라고 한다. 우매하다. 하지만 벗어나기 힘든 인간의 심리다.이번 TV토론은 과거만을 논해서 비난 받는 것이 아니다. 사실에 대한 해명도 변명도 '솔직하지 못했다'는 것에 국민들의 시선이 꽂혔기 때문만도 아니다.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통찰의 능력을 보여준 후보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 절망스러웠다고 할 수 있다.과거는 현재의 교훈이고, 미래는 현재의 거울이다. 우리가 역사를 알고자 노력하는 것은 미래를 점치기 위해서가 아니다. 현재 사고의 지평을 넓혀서 미래의 모습이 현재보다 더 나아지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우리는 누구나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현명한 이는 실수의 반복을 통해서 올바른 깨달음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어리석은 자는 과거를 지우고 계속 실수와 후회의 사이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다음 대선후보 TV 토론에서는 과거와의 '긍정적 단절'과 역사의 교훈을 통한 '대한민국 미래'가 논해지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 기대가 어리석은 짓이 될까 두렵다.박성호 기자 vicman1203@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경제부 박성호 기자 vicman1203@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