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를 잃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때부터 달렸다

의사, 과학자, 그리고 스키선수를 꿈꾸는 모델까지…불행을 이겨낸 꿈의 질주

미국의 육상선수 에이미 멀린스는 선천적으로 종아리뼈 없이 태어나 한 살 때 무릎 아래를 절단, 의족으로 평생을 살아야 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의족 착용 후 끊임없이 신체를 단련한 끝에 육상 대표로 1996년 애틀란타 패럴림픽에 출전했고, 현재는 모델, 배우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사진 = THNKR 'Athlete Discusses Cheetah Legs' 화면 캡쳐

[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본부 김희윤 기자] 사이먼 앤 가펑클의 명곡 '험한 세상의 다리 되어'는 힘든 시간, 곁에 아무도 없어 힘들어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거센 물살 위에 누워 자신이 다리가 되어주겠다는 가슴 찡한 인간애적 메시지를 전한다.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를 희사하는 감동 못지않게, 이 '다리'가 그 '다리'와는 다를지언정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고 많은 이에게 사랑과 용기를 선사하는, 세계 각국의 '다리'는 없지만 '다리'가 되어주는 사람들의 활약은 험난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진정한 희망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산골마을 곳곳을 누비며 왕진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전하고 있는 향촌의사 리쥐훙. 사진 = 중국 CCTV 방송 캡쳐

직접 산골 마을 왕진 다니는 다리 없는 천사중국 충칭시에서 향촌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리쥐훙은 4살 때 유치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화물트럭 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잃었다. 곧장 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에 들어갔지만 남은 다리는 고작 3cm에 불과했고, 가족 모두 그녀가 살았다는 안도와 장애를 안고 살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낙심했으나 그녀는 여덟 살 때부터 앉은뱅이 의자를 다리 삼아 걷는 연습을 계속해나가며 일련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녀는 자신이 잃은 다리가 아닌 얻은 생명을 감사히 생각하며 죽어가는 타인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 1996년 의료시설이 부족한 농촌 의사를 양성하는 특수직업학교에 입학, 4년의 교육을 마치고 2001년 충칭시 화잉산에 위치한 와뎬촌에 부임해 300가구, 1000여 명의 마을주민을 보살피는 '향촌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문 열고 땅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비탈길과 산길이 계속되는 이곳에서 그녀는 쉼 없이 왕진 다니느라 자신의 다리인 의자만 수십 개를 버렸지만, 소외된 이웃을 위해 오늘도 오르막 비탈길을 다니며 왕진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MIT 미디어랩 바이오메카트로닉스 연구팀을 이끌며 인공다리의 새 지평을 열고 있는 휴 허 교수. 사진 = MIT media lab

로봇 다리로 새로운 지평 여는 과학자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 과학자 휴 허는 원래 유년시절부터 촉망받는 암벽 등반가였다. 8세 때 로키 산맥의 템플산을 등정하며 혜성처럼 떠오른 젊은 등반가는 열일곱 되던 해 뉴햄프셔의 얼음산 등반 중 동료와 낙오돼 영하 29℃ 의 협곡에서 3일 밤을 보낸 뒤 구조됐는데, 당시 그의 상태는 양쪽 다리 모두 심각한 동상으로 절단해야 했던 상황. 휴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나 다리 뿐 만 아니라 직업과 꿈 모두를 잃은 그는 자신의 절단 부위에 맞춰 특수제작한 의족을 사용하며 각고의 노력 끝에 등반을 재개했고, 보형물을 원래 다리보다 더 자유자재로 쓰면서 사고 이전보다 더 과감한 암벽등반을 시도해나갔다.신체의 결함을 극복한 휴 허는 이후 학업에 몰두, 전공인 물리학 공부를 마친 뒤엔 MIT에서 기계공학 석사, 하버드에서 생체 물리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인간의 다리 기능 이상의 진보적인 다리 보조기구와 정형수술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현재 MIT 미디어랩 바이오메카트로닉스 연구팀의 수장으로 사지 절단 혹은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일상 복귀 및 인간의 신체적 조건향상을 위한 공학과학 연구로 신체장애 극복을 넘어선 새로운 로봇신체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두 다리가 없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사원에 버려졌던 카냐 세서는 미국으로 입양된 후 성장과정의 편견을 딛고 모델, 배우 활동과 동시에 현재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한 모노스키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사진 = kanya sesser 인스타그램

스키선수로 변신 꾀하는 모델태국에서 태어난 카냐 세서는 태어나자마자 두 다리가 없어 부모에 의해 불교 사원 앞 계단에 버려진 뒤 죽음의 위기를 맞았으나 그녀를 거둔 스님들의 도움으로 미국의 한 가정에 입양, 새로운 이름과 함께 낯선 환경에서 자랐다. 남과 다른 피부색, 남과 다른 신체로 받아야 했던 타인의 편견어린 시선에 더욱 대담하게 맞서나간 그녀는 장애인도 섹시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15세 때부터 스포츠 브랜드의 모델로 활동하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스스로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다리도 없고, 한계도 없다"고 되뇌며 이를 헤쳐나갔고, 지금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스키, 서핑, 농구, 테니스, 수영을 즐기면서 동시에 틈틈이 모델로 촬영스케줄을 소화하는가 하면, 2018년 시계 장애인 동계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모노스키 훈련에 매진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무기는 '발랄한 미소'라 생각한다며, 숨겨진 힘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길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디지털뉴스본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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