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노트르담 드 파리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교수형을 당해 죽은 사람들을 묻는 묘지에서 두 사람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하나는 여자의 유골이었고 하나는 등뼈가 구부러진 남자의 유골이었다. 남자는 추골이 안 부러져 있으므로 교수형을 당해 죽지 않고 거기 가서 죽었음이 분명했다. 남자의 유골은 여자의 유골을 꼭 껴안고 있었다. 떼어내려 하자 유골은 먼지가 되어 버렸다.'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Notre Dame de Paris)'를 읽기 전에 영화를 먼저 보았다. 장 들라누아가 감독해 1957년 6월 15일에 개봉한 영화 '노틀담의 꼽추'.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가장 아름다울 무렵 에스메랄다 역을 맡았다. 절묘한 분장은 앤서니 퀸을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콰지모도로 둔갑시켰다.배우는 연극이나 영화에서 맡은 배역에 자신만의 숨결을 불어넣어 원작자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곤 한다. 로렌스 올리비에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대배우지만 내 기억 속에는 '햄릿'으로 남아 있다. 어떤 배우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퀸은 1964년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찍은 다음 정말 조르바의 영혼에 동화되었다고 한다. 알렉시스 조르바. '여자의 음모로 베개를 만들 정도로 농탕한 사내',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그러나 퀸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는 나에게 노트르담의 꼽추이며 '길'에 나오는 잠파노다.내가 이 글을 쓰는 2월 16일은 천주교 사제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2009년이었는데, 조문하려는 신자들의 행렬이 명동성당을 몇 겹으로 감아 장관을 이루었다. 김 추기경이 서울교구장으로 일할 때 명동성당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지(聖地)였다. 1987년 시민혁명의 불꽃을 지킨 곳이다. 1987년 6월 시위대는 진압경찰에 쫓기다 명동성당으로 피신했다. 그들을 잡으러 온 경찰을 막아선 김 추기경은 "맨 앞에 내가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신부와 수녀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를 다 넘어뜨려야 학생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 천주교회에 추기경은 두 명으로 늘었다. 그리고 명동성당은 경찰들이 지키는 곳이 되었다. 지난 1일, '희망원전국대책위'가 성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수용시설인 대구시립희망원에서 벌어진 인권유린과 횡령에 항의하기 위해 명동을 찾았다. 경찰 100여명이 출동해 입구를 막았다. 성당에서 시설보호 요청을 했다고 한다. 경찰은 이 단체에 '염수정 추기경에게 면담 요청서를 전달하려는 계획을 취소하라'고 했다.명동성당 옆에 계성여고가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성당 앞에 나타나면 학생들이 우르르 달려가 팔에 매달렸다고 한다. 몇몇 맹랑한 학생들 사이에서 김 추기경의 별명은 '노트르담의 꼽추'였다. '꼽추의 불거진 등허리에는/무엇이 들어 있을까/X-레이 필름 속의 어둠은/그저 짧고 싸늘하게/구부러진 척추와 어깨뼈뿐이라고/대답한다, 그러나/불룩한 살집 속에/탐스러운 깃털에 싸인/날개를 숨겼다는 사람도 있다. (拙詩 'X-레이 필름 속의 어둠' 中)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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