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왼쪽 세번째) 등 정부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미국 금리인상에 따라 대책회의를 열고 있다.
[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13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숫자로 늘어난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감소시켜 소비를 위축시키는 한편 부동산시장에도 찬바람을 불러오고 있다. 통화당국이 확장적 통화정책을 펼치고 싶어도 가계부채가 더 늘어날 것을 우려해 정책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속도를 내게 되면 시중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가계의 이자, 원금 상환 부담이 급속히 늘어 한국 경제에 치명타를 입힐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늘어나는 대출, 금리도 오름세= 가계부채 가운데 비중이 가장 큰 은행권 대출의 증가세는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2016년 12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708조원으로, 1개월만에 3조5000억원(주택금융공사 모기지론 양도분 포함)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2월(2조9000억원) 이후 10개월만에 증가폭이 가장 적었지만 여전히 증가세를 유지한 것이다.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533조원으로, 한 달 새 3조6000억원 많아졌다.은행권 대출금리는 급상승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2016년 12월중 금융기관 가중평균 금리'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대출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연 3.44%로 전월 대비 0.08%포인트 올랐다. 가계대출 금리는 전달보다 0.09%포인트 올라간 3.29%로, 이는 2015년 2월(3.48%) 이후 1년10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이 중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전달 0.15%포인트 뛰어올랐던 데 이어 12월에도 0.09%포인트 상승했다. 2015년 2월(3.24%) 이후 최고치다.대출금리가 1%포인트 상승할 경우 전체 가계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이자상환 규모는 연간 9조원 안팎일 것으로 한은은 추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택 구입을 위해 빌려쓴 주택담보대출이 가계대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이자와 원금상환 부담을 버티지 못한 가계가 속출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부동산 구입 목적의 대출이 늘어난 것도 가계대출이 소비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경제에 부담으로만 작용하는 요인이 됐다.강종구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수실장은 '가계부채가 소비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가계부채의 증가가 단기적으로 경제활성화에 도움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크다"며 "긍정적인 효과를 늘리고, 부정적인 효과를 완화하기 위해 부동산 등 자산투자 목적의 대출 증가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찬우 기획재정부 차관보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2016년 8월25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청사에서 '가계부채 현황 및 관련방향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트럼프發 금리인상, 금융취약층 치명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미국의 금리 향방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금리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당초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올해 금리 인상을 3차례로 시사했지만, 시장에서는 실제로는 2차례 인상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견해가 많았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연준 이사진을 장악하게 되면 말이 달라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후보시절 "옐런 연준 의장이 저금리로 가짜 경제를 만들고 있다"며 연준의 저금리 정책을 정면 비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예고한 대로 강력한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부양에 나설 경우 연준이 서둘러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우리나라에서도 자본 유출을 가속화 시키기 때문에 한은이 국내 기준금리를 따라 올릴 가능성을 키운다. 기준금리 인상은 곧바로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부동산 구입과 생활자금 조달을 위해 돈을 빌려쓴 가계의 이자 부담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저신용·저소득·다중채무자 등 금융 취약계층은 금리가 큰 폭으로 오르면 한계상황에 이를 수 있다. 조선·해운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불안과 내수 침체, 수출 부진 등으로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경제상황을 감안할 때 가계의 고통은 상당한 수준까지 커질 것으로 보인다.경제가 침체에 빠져들지만 한은이 통화량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카드도 쓰기 어렵다. 가장 대표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할 경우 자본유출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에 외환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통화당국으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인 셈이다. 한은이 1월 기준금리를 1.25%로 7개월째 동결한 데에도 이런 고민이 담겨 있다.세종=조영주 기자 yjch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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