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황진영 기자]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의 23일 신년 기자간담회를 보면서 그의 정무 감각이 탁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대선 출마 여부를 집요하게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상황이 아니다"라면서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출마 여부를 분명히 하라고 압박하는 상황에서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황 권한대행이 대선 출마에 대해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는 태도를 가능한 길게 유지하는 게 국가를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의 가장 큰 책무인 국정 관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다. 권력의 향배에 누구보다 민감한 공무원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혹시나'하는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4~5개월 뒤에 물러날 게 확실한 사람이 하는 말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공무원은 거의 없다. 출마하겠다고 하면 야권에서 견제가 시작되기 때문에 직무 수행이 어렵다. 황 권한대행만 그런 것도 아니다.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이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탈 때까지도 출마 한다, 안 한다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와 관련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황 권한대행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해 보인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대선정국이 요동치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 지 알 수 없다. 새누리당이 침몰하고 있지만 아직도 현역 의원 96명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정당이다. 충청권 의원들은 반 전 총장을 따라 새로운 배로 옮겨 타겠지만 대구 경북지역 의원들은 남아서 배를 고칠 것이다. 가라앉지 않을 정도로 수리가 되면 새로운 선장을 구할 것이고, 황 권한대행이 영입 1순위가 될 것이다. 새누리당 의원들 중에서는 황 권한대행이 보수를 대표하는 주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많다. 법무부장관에 국무총리, 권한대행까지 한 이력은 정치 경험이 없다는 단점을 상쇄할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이다. '박근혜의 남자'라는 꼬리표가 확장성에는 걸림돌이지만,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정치인의 필수 덕목인 연설 능력도 좋다. 일단 중저음의 목소리가 좋고 정확한 표준어를 구사해 전달력이 좋다. 아직 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았는데도 지지율이 5% 내외로 꾸준히 나오고, 10%에 육박하는 지지율이 나온 조사도 있다. 그가 본격적인 대선 행보를 했을 때는 상승 가능성이 충분하다. 출마 가능성을 열어둔 채 정치와 외교를 넘나드는 그의 광폭 행보를 보면 권한대행만 하다가 끝날 거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로펌에서 고문이나 하면서 남은 인생을 보내기에는 너무 젊다. 황 권한대행은 1957년 4월 15일생으로 만 나이로는 50대이다. 총리에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낸 그가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하기를 희망한다면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황 권한대행이 대선판에 뛰어들지 말지는 '지금은' 알 수 없다. 본인 스스로도 모를 수 있다. 그가 하고 싶다고 해도 대선판세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꿈을 접어야 한다. 하기 싫어도 여권에 마땅한 후보가 없을 경우에는 등 떠밀려서 나갈 수도 있다. 황 권한 대행의 출마여부는 이번 대선의 관전포인트 중 하나다. 황진영 기자 young@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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