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블로그]히포크라테스는 없었다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아픈 이들이 많은 시대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분노와 스트레스가 '다스림'을 넘어섰다. 화병이 생길 지경이다. 아픈 사람을 치료해야 하는 병원이 오히려 국민 스트레스 지수를 올리는 주범이 되고 말았다. 국가중앙병원 역할을 해야 할 서울대병원은 권력 앞에 쪼그라들었다. 청와대 주치의를 지냈던 이병석 세브란스병원장이 비선진료 의혹과 관련해 특검에서 조사를 받았다. 차병원은 최순실과 밀접한 관련성은 물론 제대혈을 불법으로 공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순천향대서울병원도 정유라·장시호와 얽혀 잡음이 일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로 제재를 받아야 함에도 뒤늦은 복지부의 대처로 특혜의혹이 일었다. 이쯤 되면 국민들은 병원을 '병을 고치는 곳'이 아니라 권력에 빌붙는 추악한 존재쯤으로 생각해야 할 판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속에서 국내 유명 병원들이 국민과 환자보다는 권력과 이익에 빠져든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에게서 '양심과 위엄으로 의술을 베풀겠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은 국민과 환자보다는 권력과 사익을 챙겼다. 국가중앙병원의 역할보다는 권력과 유착했고 호가호위(狐假虎威)를 앞세워 자격도 없는 특정인물에 특혜를 제공했다. 서 원장은 청와대 주치의를 지낸 뒤 곧바로 서울대병원장에 올랐다. 권력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서 원장은 전문의도 아닌 일반의에 불과한 김영재 성형외과 원장을 서울대병원 외래교수에 위촉하는 상식 이하의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전문의가 아니면 외래교수 자체가 될 수 없다"며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관련 제도와 법적 근거가 있음에도 권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차병원은 최순실의 비선진료 의혹이 일고 있는 차움의원에서부터 시작됐다. 이어 제대혈을 차광렬 회장 일가에 불법으로 시술한 사실이 드러나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연구용으로 제대혈을 제공했던 산모들은 차병원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차병원을 믿고 제대혈을 맡긴 엄마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특검은 17일 김영재 원장을 소환했다. 참고인이 아닌 혐의가 짙은 피의자 신분이다. 최순실의 단골 병원을 운영했던 김 원장은 진료기록부 허위작성으로 대통령 관련 의료행위 흔적을 교묘히 속인 혐의를 받고 있다. '세월호 7시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서창석 서울대병원장도 곧 특검에 소환될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과 연루, 김영재 원장을 외래교수로 위촉한 배경 등 여러 의혹에 대한 실체적 접근이 이뤄질지 관심의 대상이다.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사회적 지위여하를 초월해 오직 환자에 대한 의무를 지키겠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이들에게 한갓 종이쪽지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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