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신한은행, 일본 현지 법인인가 '국내 유일'…철저한 '글로컬리제이션' 전략 주효
한국의 금융에서는 왜 아직 세계 1등이 없을까. 아시아경제는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국내 금융사들이 남다른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를 밀착취재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은행들은 고만고만한 상품과 시장환경에서도 '비장의 무기'를 하나씩 갖고 있었다. 이같은 분야가 은행의 새로운 성장엔진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국내외 시장에서 활발히 미래 먹거리를 찾고 있는 국내 은행들의 모습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아시아경제 손선희 기자] 2012년 말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재집권에 성공한 뒤 '무제한 양적완화'로 대표되는 대대적인 경제 부양책을 펼쳤다. 이른바 '아베노믹스'의 시작이었다. 아베 정권은 특히 수년째 불황이었던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주담대)에 대한 각종 세금 감면 혜택을 늘리고 기간도 연장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완만해졌고 엔저(円低) 바람을 타고 일부 상업지구나 대도시 재개발 지역은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도심 역세권 부동산은 출퇴근족(族)을 중심으로 실수요가 늘면서 임대용 부동산에 대한 투자바람이 불었다. 신한은행 일본법인(이하 SBJ은행)은 이 조그만 변화의 바람을 놓치지 않았다. '임대형 모기지(mortgage)' 라는 틈새시장에 주목한 것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대단지 아파트보다는 맨션 형태의 저층 주택이 많다. 이들 중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 역세권 부동산의 경우 금리 조건만 맞다면 임대사업자들의 투자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봤다. 마침 아베노믹스의 통화확대와 세금감면 등 대외적 여건도 맞아떨어진 상황이었다. 더구나 SBJ은행 직원들은 일본 특유의 조밀한 부동산 현장을 '발로 뛸' 각오가 돼 있었다. '환경'과 '의지'를 다 갖춘 셈이다.결과는 놀라웠다. SBJ은행이 출시한 임대형 모기지 상품은 2013년 211억엔(신규취급액 기준)에서 2014년 670억엔, 2015년 1080억엔으로 출시 3년 만에 5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에도 이미 11월말 기준 1050억엔의 신규대출을 이뤄 연말 기준으로 이전해의 기록을 뛰어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외국계 은행의 무덤'이라 불리는 일본 시장에서 이루어낸 성과라 더욱 돋보였다. 진옥동 SBJ은행 법인장은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두 계단 상승한 부행장으로 전격 발탁 승진했다. 신한은행 글로벌사업부 관계자는 "SBJ은행은 현지 사정에 적합한 주택론 상품을 발굴해 뛰어난 성과를 거뒀다"며 "향후 기축통화를 사용하는 선진국 시장으로의 해외진출에서 SBJ은행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도쿄에 위치한 SBJ은행 본점 영업지점 사무실 전경 (사진 : 신한은행)
신한은행이 일본에 지점 형태로 첫 진출한 것은 1986년이다. 일본 금융감독당국의 각종 규제를 뚫고 2009년 9월 법인 인가를 받기까지 23년이 걸렸다. 일본 금융시장에서 법인 형태로 운영되는 국내 은행은 신한이 유일하고, 글로벌 금융사 중에서도 씨티은행 뿐이다. 그만큼 일본 금융시장은 현지에 진출한 외국계 금융사의 성공사례가 거의 없다. 강석진 SBJ은행 기획부 부부장은 "법인 전환 후 첫 1~2년은 '손가락만 빨았을' 정도로 쉽지 않았다"며 "2013년 주택론을 출시하면서 현장을 발로 뛰었고 이렇게 쌓아뒀던 내공이 마침내 빛을 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넘게 영업을 해 온 덕분에 현지 정세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재빠르게 시장 움직임에 대응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SBJ은행의 이 같은 성공은 처음부터 '현지 고객'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기도 하다. 통상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은행의 경우 설립 초기 빠른 정착을 위해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과의 거래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 애초에 거의 없다. 강 부부장은 "일본의 경우 국내 기업을 중심으로 한 캡티브 마켓(Captive Market)은 규모가 적고 확장성도 제한적이라고 봤다"며 "결국 '현지에서 승부를 보자'는 각오로 리테일에 주력한 것이 성공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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