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참여 주도자로 변신…얼굴 없는 '팬텀세대'

이화여대 학생시위는 익명의 개인들이 모여 목소리를 낸 대표적인 예

지난 5월 '강남역 살인사건' 발생 당시 피해자인 20대 여성을 추모하기 위해 강남역 주변에 추모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사진=아시아경제DB)

[아시아경제 금보령 기자] '팬텀세대'는 팬텀(유령)과 세대를 합친 단어다. 강력한 목소리를 내지만 흔적은 남기지 않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속 팬텀처럼 소통을 나누는 20대를 의미한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는 이 단어를 '2017 트렌드 키워드'로 꼽기도 했다.이처럼 올 한 해 익명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20대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지난 7월 '평생교육 단과대학 미래라이프대학 사업' 추진을 두고 발생했던 이화여대 학생시위는 익명의 개인들이 모여 목소리를 낸 대표적인 예다. 이화여대생들은 선글라스와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렸고, 이름·학번 등 개인정보는 서로 묻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벗'이라고 불렀을 뿐이다. 의견 개진도 익명으로 이뤄졌다. 이화여대 온라인 커뮤니티 '이화이언' 안에 있는 익명게시판 '비밀의 화원'에서 학교 점거농성 계획 등을 토론하고 구체화시켰다. 물품지원, 모금 등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당시 점거농성에 참여했던 한 이화여대생은 "지난 여름 진행했던 시위는 평범한 학생들이 다 같이 목소리 냈다는 게 중요한 점이다"라며 "게시판에 혹여 작성자 ID라도 있으면 누군가 주동하기 마련이고, 이게 총학생회가 진작 발을 뺀 이유다. 익명으로 의견을 낼 때는 모두에게 발언권이 동등하게 돌아간다"라고 말했다. '포스트잇 추모'라는 새로운 시위 형태도 생겨났다. 지난 5월 '강남역 살인사건' 발생 당시 피해자인 20대 여성을 추모하기 위해 강남역을 비롯해 전국 9개 지역에서 총 3만5350개의 포스트잇이 모여들었다. 포스트잇 추모는 뒤이어 있었던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옮겨갔다. 20살 비정규직 근로자가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던 때다. 두 사건 모두 피해자가 20대였다는 점에서 또래인 20대들이 더 크게 반응했다. 당시 강남역 10번 출구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온 고민정(28·여)씨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 내 생각을 적었다"라며 "이름은 쓰지 않았지만 내 생각은 충분히 전달됐을 것이다"라고 얘기했다.20대는 대통령 지지율로도 사회에 목소리를 전달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 지난 달 11일 여론조사 기관 갤럽이 발표한 대통령 지지율은 20대에서 0%를 기록했다. 당시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도 20대에서는 96%가 나와 전체 세대 중 가장 높았다. 대통령 지지율 조사는 익명으로 이뤄지지만 20대 의견은 통일됐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익명이 아닐 때는 자신의 역할이나 직분 등 사회적으로 주어진 것들 때문에 감정을 절제하게 된다"며 "익명은 자기의 감정이나 속내를 더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게 하는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곽 교수는 "익명일 경우 책임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자유로운 걸 추구하는 20대의 성향을 보여주는 현상이다"라고 덧붙였다.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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