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김근철 특파원
지난 2006년 10월4일 한국 신문들은 일제히 '반기문 스토리'를 1면 톱기사로 다뤘다. 당시 외교장관이던 그가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4차 예비투표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 사실상 유엔(UN) 사무총장으로 낙점됐기 때문이다. 언론은 물론 나라 전체가 지구상 최대·최고의 국제기구 수장을 한국이 배출했다는 점에 들썩였다. '단군이래 첫 쾌거'란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 당시 외교부를 출입한 기자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사실상 확정, 세계를 딛고 서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썼다. 차기 유엔사무총장 확정의 의미와 반 장관 인물평과 세간의 기대를 비교적 상세히 다룬 내용이었다. 외교부 출입기자들은 유엔으로 떠나는 반 장관에게 '유만(세상을 움직인다는 의미)'이란 덕담을 적어 넣은 세계 지도를 선물하며 장도를 축하했다. 원래 기자들 사이에서 반 총장의 별명은 '어려운 질문을 잘도 피해간다'는 의미에서 '기름장어'나 이를 그대로 한자로 옮긴 '유만(油鰻)'이었다. 부정적 이미지를 지우고 세계무대에서 성공한 유엔 사무총장이 돼달라는 기원을 담은 셈이다. 그것이 국민적 염원이라고 생각했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지난 20일 기자는 다시 '떠나는 반기문'과 마주 대했다. 이번엔 뉴욕에서 서울행이다. 그는 이날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마지막 고별 기자회견을 한국 특파원들과 가졌다. 반 총장은 "최근 주변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 뿌듯하다"고 애써 자평했다.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가 '역대 최악의 유엔사무총장' 이라고 혹평했고 유엔 주변에서도 비판적인 평가가 적지 않다는 점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반 총장이 우려해야 할 대목은 자기 임기 중 업적이나 노고가 제대로 평가조차 받을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고별 회견에서도 언론의 관심은 온통 '대선후보 반기문'의 귀국 이후 행보에 쏠렸다.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반 총장이 자초한 일이다. 유엔사무총장인 그가 한국 정치에 기웃거리고 대권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면서 시작된 변화다. 국사책에 기록될 '위인'에서 정치판에 뛰어들 '잠룡'으로 자기 입지를 좁혀놓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가 뉴욕에서 최대 업적이라고 거듭 강조한 파리기후변화 협정과 2030지속가능개발목표 합의조차 서울로 가면 한낱 '정치적 수사'로 치부될 공산이 커졌다. 귀국 이후 그를 환영할 각종 행사들도 특정 정파의 배경과 이해득실부터 따져봐야 할 판이다. 10년 전 국제무대에서 큰 업적을 남겨달라며 뉴욕으로 환송할 때의 분위기와 기대와는 분명 상당히 어긋나 있는 상황이다. 서울로 돌아가는 반 총장에 대한 환송사는 이래저래 당혹스럽고 개운치 않은 뒷맛이 남는다.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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