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났다. 40대 후반의 언론인이었던 남자는 회사에 사직서를 냈고, 대학강사와 연구교수, 생활협동조합 이사장 등으로 일하던 여자도 일을 접었다. 여기에 대학 1학년을 마친 큰 아들, 고2 둘째 아들, 중3 조카까지 배낭을 짊어졌다. 이들의 목표는 세계 일주.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 스스로 의문을 가졌다. '과연 우리의 여행은 성공할 수 있을까.'소위 '386세대'인 남자는 사회정의의 파수꾼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신문사에 발을 디뎠지만, 현실의 벽은 두껍고 높았다. 신문사에서 정치부장, 경제부장을 거치며 잘 나가는 언론인의 길을 걸었지만 갈증은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기득권층으로 전락해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꿈과 희망보다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공부하고 진학하는 데 허덕였다. 가족은 자주 삐걱거렸고, 그때마다 고통이 밀려왔다. 고통은 여행으로 치유될 수 있을까. 그들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여행의 첫 도착지는 필리핀이었다. 아이들의 어학연수를 위해 찾은 그곳부터 지구 한 바퀴를 돌았다. 남자와 여자, 아이들의 여행은 귀국하기까지 '따로 또 같이' 진행됐다. 1년 하고도 3일이 걸렸다. 아시아와 유럽, 남미와 북미 등 4개 대륙 23개 나라를 다녔다. 머문 도시만 99개에 이른다. 버스와 기차 등 대중교통을 탔고,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이 몰리는 호스텔과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이들이 이동한 거리는 6만km를 넘었다. 여행은 단순히 보고, 자고, 먹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곳곳의 변화의 현장을 만난다. 네팔에서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박타푸르에 있는 비정부기구(NGO)를 찾았다. 중국에서는 반식민·반봉건 혁명기 최후의 근거지이자 해방구였던 예안까지 들어가 혁명가들의 발자취를 확인했다. 인도에서는 나브단야 실험농장에서 체험활동을 하며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를 만나고, 콜카타 테레사 센터에서 다국적 여행자들과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이탈리아 오르비에또의 국제슬로시티연합과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브라질 쿠리치바 시청의 환경담당자를 만나고, 인도의 케랄라를 방문한 것도 스쳐가는 여행으로 기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역사와 사회를 다시 생각했다. 희망과 행복, 실천의 소중함을 가슴에 담았다. 가족 여행은 예상치 못한 많은 어려움을 잉태한다. 기차를 놓치고, 집채 만한 배낭을 메고 거리를 헤매며 서로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기도 한다. 남자는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여행 일정을 마음대로 결정한다. 가족의 갈등을 통해 남자는 평소 자신의 태도가 얼마나 가족을 힘들게 하는 지 알게 된다. 남자가 지쳐 나가떨어지자 아이들이 직접 여행을 이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마음을 연다. 리더가 되고, 요리사가 된다. 깨달음은 그렇게 찾아왔다.이 책은 어쩌면 뻔한, 가족 여행기다. 또 어쩌면 전혀 다른, 가족들의 자아찾기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의 여행을 꿈꾼다면,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이 지겹다면,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을 가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 그렇다고 그대로 따라하지는 않기를 권한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이 가족처럼 말이다.<'길을 찾아 나선 가족'(전 4권)의 지은이는 이해준이다.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연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2004년 영국 셰필드 대학 대학원에서 생태공동체에 대해 연구(정치학 석사)했다. 1990년 헤럴드경제(옛 내외경제)에 입사해 증권과 금융, 산업 등 경제분야와 국제이슈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하고 경제부장, 정치부장, 디지털뉴스부장을 지냈다. 2011년 가을 가족과 세계여행을 떠난 뒤 귀국해 문화부장을 거쳐 지금 선임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자본의 시대에서 인간의 시대로'(1999, 도서출판 한울)가 있다.>조영주 기자 yjch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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