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8시33분 뜻밖에 강한 4.5 경주여진, 조간은 어떻게 보도했나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19일 저녁 8시33분에 발생한 경주의 4.5 여진은, 지난 5.8 강진 이후 딱 1주일만에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이미 공포를 학습한 영남 일대의 주민들은 진동을 느낀 뒤 건물을 뛰쳐나갔고 거리를 서성였고, 전국에서 지진 감지 전화가 국민안전처와 언론사에 빗발쳤습니다. 이 여진이 '뉴스'가 되는 핵심적 이유는, 전문가도 예상하기 어려웠던 강한 여진이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무려 300여 차례의 간헐적인 작은 여진이 계속 되다가 일주일 뒤에 다시 상당한 진도로 흔들린 것이기에, 이걸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를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기까지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이 만약 다른 단층대의 지진일 경우나, 영남 일대의 복잡한 단층대가 지난번의 강진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열기가 올라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서로 간섭하면서 발생한 지진일 경우, 또다른 강진이 예상되는 상황이라 무척 예민하고 심각한 문제입니다. 물론 ‘정상적인 수준’의 여진이라는 진단이 우세하기에 섣불리 호들갑을 떨 문제는 아닙니다.
오후 8시33분이란 시각은, 한국의 조간신문들로서는 가장 뉴스소화력이 좋은 타이밍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체로 오후 6시 무렵의 초판(10판, 현재는 없앤 곳도 있음)과 40판이 조간의 핵심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40판은 대체로 오후8시-10시까지 찍는 조간의 중심판입니다. 이후 신문사의 인쇄와 배송 여건에 따라 41, 42판 등으로 추가 개판(改版)을 하게 되어 있죠. 신문사에 따라 시스템이 조금씩 다르긴 합니다만, 최종판의 경우는 서울 중심부에 뿌려지는 게 일반적입니다. 제가 조간을 받아보는 위치는 충무로이므로, 거의 최종판이 오는 게 정상일 것입니다.이렇게 신문 제작 및 배송 시스템을 감안하면서, 배달된 조간신문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오후 8시40분경 방송(YTN 등)은 이미 지진 발생에 대한 보도를 하고 있었지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거의 비슷한 크기의 사이드(2단) 기사로 다뤘습니다. 조선일보는 4.5 여진이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을 제목으로 올렸습니다. 중앙일보는 부산지하철이 일시 정차한 내용을 뽑았습니다. 가장 크게 다룬 곳은 한국일보입니다. 지진공포가 되살아났다는 점을 부각시켰습니다. 지진을 피해 밖으로 나온 경주의 주민들이 왕릉 주변에서 텐트를 치는 장면의 사진도 실었습니다. 경제신문으로서는 매일경제가 이 기사를 2단 톱으로 다뤘습니다. 1주일만에 또 발생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네요. 무려 3개면을 펼쳐 순발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또 이 뉴스를 2단 톱으로 다룬 곳은 경향신문입니다. 이 신문은 "진원이 남하하며 잇단 여진을 만들고 있다"는 분석을 헤드라인에 달았습니다. 한겨레는 배꼽 부분 3단 박스로 기사를 처리했고, 안전처의 홈피가 먹통이 된 사실을 부각시켰습니다. 또다른 경제지로는, 파이낸셜뉴스와 서울경제가 1면 주요기사로 다뤘고, 머니투데이는 비교적 귀퉁이에 작게 처리했습니다. 배달된 신문 중에서 동아일보는 이 기사를 싣지 않았습니다. 이 신문의 경우 인터넷판인 아이서퍼 PDF에는 기사가 실려 있네요. 이같은 편집서비스를 어떻게 봐야할가요. 지진 상황 때 제작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거나, 뉴스가 긴급 처리할 만큼 중요하지는 않다고 판단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비교적 이른 시간대 발생한 지진이 서울 한복판에 배달되는 지역에 '뉴스'로 실리지 않았다는 건, 어떤 방식으로 설명해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죠. 이 시간대에 일어나는 돌발사건에 대한 대응 역량에 의문을 지닐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한편 한국경제는 1면에 지면안내 밴드를 붙이는 형식으로 소극적으로 처리했습니다. 경제신문이라는 점을 의식해 '비경제적 사건'이라 판단한 것일까요. 1면에 지진 외에도 다뤄야할, 긴급하거나 중요한 알짜배기 기사들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요. 물론 실제적인 '피해'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여진을 게재하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신문의 '내진 설계'를 말하는 건 좀 과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난밤 국민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킨 '천재지변'이며, 아직도 진행형의 공포인 이 사건에 대해 신문이 팔을 걷고 나서서,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문제를 분석해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전처 홈피의 불통 만큼이나 문제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지진이, 한반도의 땅밑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상황을 말해주는 사인인지 충실하고 정교한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그저 공포감만을 피상적으로 전달한 신문들의 헐렁함 또한 문제지만, 그보다는 독자를 위해 긴박한 시간을 쪼개 콘텐츠를 담으려고 필사적으로 나서지 않는, 나사 풀린 언론의 한 단면을 이번 지진이 노출했다고 볼 수도 있다. 대한민국 언론들의 내진설계. 이것도 큰 문제가 아닐지요.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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