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나비가 쓰고 남은 나비/심언주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가 날아간다 나비는 잘 접힌다 또 금방 펴진다 나비가 될까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를 깜빡인다 나비는 몸이 가볍다 생각이 가볍다 마음먹은 대로 날아가는 적이 드물다 줄인형처럼 공중에 매달려 나비에게서 달아난다 나비에게로 돌아온다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를 닮아 간다 옥타브를 벗어나는 나비 따라 부르기 어려운 나비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를 넘어선다 높아지는 나비 어머나 비가 온다 어머나 비가 간다 나비가 버리고 간 나비 나비가 채우는 나비 줄인형처럼 꽃밭 속에 나비를 담근다 나비가 될까 나비가 될 수 있을까 나비를 밀어내며 나비가 발생한다 나비를 서성이며 나비가 날아간다  ---------- 
 나비가 난다. 그런데 나비가 어떻게 날더라? 나비는 일직선으로 날지 않는다. 나비는 팔랑팔랑 난다. 그런데 팔랑팔랑 나는 건 도대체 어떻게 나는 거더라? 나부끼듯 나는 건가? 그런 것 같다. 위아래로 옆으로 나풀나풀 너울거리듯 난다. 그렇게 난다, 나비는. 정신없이,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난다. 가끔은 순간 이동을 하듯 난다. 왼쪽 위로 날아가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오른쪽 아래로 날아간다. 희한하다. 앞으로 날아가는 듯했는데 문득 뒤쪽 위로 솟구치기도 한다. 그래서 나비는 차라리 툭, 툭, 툭, 난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툭, 툭, 툭 말이다. 그렇구나. 나비는 금방 있던 자리에서 저 자신을 툭 밀어내고 순식간에 다른 자리로 날아간다. 그리곤 또 툭, 툭, 툭. 그때마다 나비는 좀 전까지의 자신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나비로 탄생하는 듯하다. 재미있지 않은가. 나비 한 마리가 공중을 날아간다. 아니다. 나비 하나가 무수한 나비들로 환생하면서 허공 곳곳에 나비들을 꽃 피우고 있다.(채상우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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