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나 형님이 낳은 아이에 퍼붓는 대책없는 선물공세와 '구애' 풍속도
조카를 사랑하는 '조카바보'들이 늘고있다. 그림=오성수
[아시아경제 부애리 기자]#직장인 박모(33)씨는 자칭타칭 '조카바보'다. 박씨의 휴대폰은 온통 3살 조카 사진으로 가득하다. 박씨의 언니와 동생 세 자매가 모두 있는 가족 단체 카톡방에서는 조카의 일상이 수시로 공유된다. 직장동료에게도 마치 자식을 자랑하는 것처럼 조카자랑이 끊이질 않는다. 조카 옷 쇼핑도 자주한다. 박씨는 "요즘엔 예쁜 옷들이 너무 많아서 다 사주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조카바보'가 된 사람들이 늘고있다. '조카바보'는 조카밖에 모르고, 친자식처럼 조카를 사랑한다해서 등장한 신조어다. 비혼·만혼 등 1인가구 500만시대에 접어들면서 등장한 신(新)인류다. '조카바보'라는 개념은 연예계 대표 싱글족들이 남다른 조카 사랑을 공개하면서 하나의 개념처럼 굳어졌다.'조카바보'란 말이 등장한 것은 2009년 한 언론사의 연예뉴스 제목을 통해서다. 요즘은 '골드앤트·엉클(골드미스에 고모와 삼촌을 합친 용어·조카에게 온갖 선물공세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를 밀어내고 조카사랑을 의미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됐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지난 3월부터 '조카' 키워드를 포함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언급을 조사한 결과 총언급량 16만6712건 중 긍정적인 언급이 11만2611건으로 월등히 높았다. 왼쪽 그래프는 2007년부터 '조카바보'가 언급된 기사량(자료=펄스K, 빅카인즈) 그래픽=오성수
◆조카를 자식처럼 '아낌없이 준다' 싱글족=연예계 대표 골드미스 방송인 이영자는 최근 한 방송에 출연해 조카를 돌봐야 했던 상황을 설명하며 "내가 하고싶은 걸 덜 해야만 조카들한테 해 줄 수 있었다. 조카들을 대학교까지 보내야한다고 생각했다"며 눈물을 보였다. 또 다른 골드미스인 배우 엄정화 역시 조카바보로 유명하다. 자신과 꼭 빼닮은 조카 엄지온에게 화장대를 선물하는 등 통 큰 고모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배우 이서진, 한지민 등이 연예계 대표 조카바보로 알려져 있다.
엄정화가 자신의 조카 엄지온과 함께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유했다.
학원강사 김모(33)씨는 4살 조카에게 한 달에 40만~50만원 가량을 쓴다. 김씨는 각종 모임이나 지인의 결혼식에 조카를 데려 가는데, 이 때마다 조카의 머리핀부터 신발까지 세심하게 챙기기 때문이다. 김씨는 "조카가 너무 예뻐서 계속 같이있고 싶어서 여기저기 데리고 다닌다. 취미생활을 해도 그 정도 돈은 든다"며 "조카에게 투자하는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 주변에서 조카에게 정성 쏟아봤자 크면 다 소용없다고 말하지만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좋아서 해주고 싶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혼해도 '조카'가 최고=무자녀·맞벌이 부부 증가와 보육 대란도 '조카바보' 현상에 한 몫한다. 13일 서울시에 따르면 아이 없는 부부가구는 2004년 35만349가구에서 2014년 47만5002가구로, 10년새 12만4653가구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 또 워킹맘들의 어린자녀가 친가나 외가에 맡겨지면서 자연스레 친밀해지면서 '조카바보'가 되기도 한다.결혼 4년차지만 아직 자녀가 없는 박씨는 3살 조카에게 엄마와 같은 존재다. 일이 바쁜 언니를 대신해 친정엄마와 함께 조카를 살뜰히 챙긴다. 퇴근 후에도 조카를 보기위해 집 가기전에 친정집을 꼭 들른다. 이젠 조카가 엄마보다 이모를 더 먼저 찾을 정도다. 박씨는 "조카가 케잌에 초를 꽂아놓고 부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모가 오기만을 기다리더라"며 "남편이 자신보다 조카를 더 챙긴다며 서운해할 때도 있지만, 조카를 보면 안쓰러워서 자꾸 이것 저것 사주고 싶고 더 챙겨주게된다"고 전했다. ◆"비싸도 우리 조카꺼니까"=사정이 이렇다보니 '조카바보'들은 유통업계 큰 손으로 떠올랐다. 어린이날 선물 대상 순위에 조카가 자녀를 넘어설 정도다. 옥션이 지난 4월19~25일까지 이용고객 667명을 대상으로 '올해 어린이날 선물 트렌드'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선물을 사줄 대상을 묻는 질문에는 자녀(36%)보다 조카(39%)가 더 많았다.
백화점 아동용품 매장에서 물건을 쇼핑하고 있는 모습.
유안타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유아·아동 산업의 규모는 2012년 27조원으로 2000년대 초반 이후 연평균 13%의 성장률을 보이며 2015년 기준 39조원 규모로 확대됐을 것으로 추정 된다. 아동 인구수가 감소 추세에 있는데도 관련시장이 꾸준히 상승하는 것은 한명의 아이를 위해 부모, 양가 조부모, 삼촌, 이모 등 8명이 지갑을 연다는 이른바 '에잇포켓' 현상 때문이라는 분석이다.이런 추세에 힘입어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도 키즈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아르마니 주니어, 펜디 키즈, 구찌 칠드런, 몽클레어 키즈, 버버리 키즈 등 해외 유명 명품 브랜드들은 키즈 시장에 발 빠르게 대응 중이다. 샤넬의 수석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도 '칼 라거펠트 키즈'를 론칭했다.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에게는 2세에 대한 욕망이 있다. 간혹 결혼을 안했어도 아이는 갖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며 "나를 이어가겠다는 동물적 본능이 있는 것이다. 싱글족이나 또는 결혼을 했어도 경제적 여건이나 여러 상황 때문에 자식이 없는 경우 가장 가까운 조카에게 애정을 쏟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또 부모는 아무래도 자식을 잘키워야겠다는 부담감에 자식을 엄격하게 교육하는 경우가 있지만, 조카는 상대적으로 그런 부담이 덜하기 때문에 마냥 귀엽고 예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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