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서울 광화문광장 남단 '416가족분향소'. 분주한 도시의 일상 속에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이곳을 찾는 추모객들은 2년 전 그날을 떠올렸다. 2014년 4월16일, 대한민국 어른들이 모두 죄인이 된 날이다.
세월호 2주기를 앞둔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희생자 분향소에서 두 학생이 헌화를 하기 전에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윤동주 기자 doso7@
11일 광화문광장 분향소엔 난데없이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거제도 연초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서울로 수학여행을 왔다가 분향소에 들른 것이다. 서울 구경에 신이 난 아이들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돌아다녔다. '그날' 제주도 수학여행길이었던 단원고등학교 언니 오빠들도 그랬을 것이라는 걸 느꼈을까. 이내 학생들은 하나 같이 세월호 진실 규명을 위한 서명대인 '진실마중대'에서 서명을 하고 노란 리본을 받았다. 이 학교 2학년 정지영 양은 "가슴이 아프다. 리본을 보면, 노란색을 보면 계속 생각 날 것 같다"고 말했다.이곳 분향소엔 총 14개의 천막이 있다. 진실마중대를 비롯해 노란 리본을 만드는 '노란리본공작소', 시민들에게 차와 음료를 나누어주는 '천막카페', 단원고 학생 희생자 부모들이 돌아가면서 지키고 있는 분향소 등이다. 11개는 서울시가 제공한 천막이고 나머지 3개는 '416가족협의회'가 서명대와 분향소로 사용하기 위해 설치했다.노란리본공작소는 추모객들에게 나눠주는 노란 리본을 만드는 공방이다. 1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요일에 관계없이 나온다. 하루에 7000개, 한달엔 12만개에 달하는 리본이 이곳에서 봉사자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다. 경기도 안양에서 이곳 광화문까지 매일 오고 있는 양승미(46·여)씨는 "1주기 때는 매일 사람도 많았는데 2주기가 되니 사람들이 적어진 것 같다"며 "다른 일들이 많아서 그런지 아쉽다"고 말했다.분향소는 유가족과 협의회, 봉사자들의 노력으로 유지되고 있다. 매일 오후3시 이곳에 나와 노란 리본을 나눠주는 여든살 '리본 할아버지'는 "자기 자식이 억울하게 죽었다고 생각해보면 사고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처리됐는지 알고 싶지 않겠느냐"며 "정부가 진실을 자진해서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곳에서 서명을 받고 있는 박규옥(50·여)씨는 "일부 단체들에게 수모도 많이 당하지만 이렇게 서명을 해주시는 분들을 보면 힘도 난다"며 "2년이란 시간이 지나도 내성이 안 생기고 화가 나고 눈물도 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이뤄지는 서명은 하루 평균 200건, 주말엔 1000건 가까이 된다.이날 광화문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들은 학생부터 직장인, 어르신까지 다양했다. 올해 국민대학교에 입학한 고윤정(가명, 20·여)씨는 "단원고 친구들이 저랑 같이 새내기가 되거나 친구가 될 인연이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며 "정부가 2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 거 같아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에서 세월호 희생자 중 한명인 고(故) 남윤철 선배님(당시 단원고 교사)의 이름을 딴 강의실을 마련한 것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오후 7시가 넘어가자 퇴근한 직장인들도 모여 들었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김영수(38)씨는 "가슴 아픈 일인데 사람들 기억에서 많이 잊히고 있는 것 같다"며 "요즘 회사에선 노란 배지나 리본을 달고 있으면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고 말했다. 동두천에서 온 이용관(56)씨는 "16일과 주말엔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서 미리 둘러봤다"며 "일반 시민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는데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광화문역 근처에 살고 있는 주부 이모씨는 "분향소 전시관에서 아이들을 위한 엽서를 자주 쓴다"며 "그래도 끝까지 계속해서 우리가 마음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이곳 광화문 분향소엔 '광화문 지킴이'들이 있다. 단원고 학생 희생자들의 각 반 부모들로 요일별로 돌아가며 분향소를 지킨다. 세월호 참사로 단원고 학생 250명과 선생님 11명, 일반인과 세월호 선원 43명이 희생됐다. 그 중 9명은 아직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 희생자 고(故) 강승묵군의 어머니 은인숙(46·여)씨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진상 규명이) 길게 가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부모도 힘들고 지치는데 국민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은씨는 이어 "그렇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유가족들을 믿어 주고 같이 해달라"며 "나야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앞으로 나중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보면 그럴 수 없다"고 강조했다. 남편과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평범하게 살던 은씨는 세월호 사고 이후 1년간 심리 치료를 받고 최근에서야 다시 정상적인 삶을 시작했다.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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