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규준 제재 없고, 범위 넓어…'지배구조 공시' 외면

[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 김민영 기자]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논란, 현대차의 한국전력 부지 고가매입, 롯데 경영권 분쟁 사태 등으로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일선 기업들은 정작 관련 내용을 공개하기 부담스럽다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아시아경제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696개사 중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에 맞게끔 공시를 하고 있는 상장사는 32곳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은 기업이 지나치게 비대칭적인 정보를 투자자와 공유하고, 기업과 투자자가 협력해 공정한 지배구조를 구축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1999년 만들어진 후 2003년 한 차례 개정을 했다. 지배구조와 관련한 주요 공시대상은 집중투표제 채택여부, 이사회 구성현황, 사외이사의 독립성, 실질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의 구체적인 주식소유 현황 등이다.◇재벌 계열사ㆍ시총 상위기업들 무관심= 특히 규모가 큰 재벌그룹 계열사들이 지배구조와 관련한 공시에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 현대차그룹, LG그룹, 한진그룹, GS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등은 지주사와 계열사를 불문하고 공시한 곳이 한 곳도 없었다.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증권, 삼성전기 등 일부 계열사는 지배구조와 관련한 공시를 하고 있지만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는 하지 않고 있다.시가총액 상위 기업들도 지배구조와 관련한 공시에는 인색했다. 시총 상위 10대 기업 중에는 SK하이닉스만 유일하게 모범규준에 부합하는 지배구조 관련 공시를 했다. 지난해 공시에 동참한 SK이노베이션과 KB금융지주 등 2개사를 포함해 포스코, 삼성전기, 한샘, S-Oil, 삼성증권, 케이티, SK, 신한지주, 두산중공업 등은 모두 시가총액 상위 10위권 밖의 기업들이다.◇강제사항 없고, 현실성 떨어지고= 주요 상장사들이 지배구조 관련 공시에 소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과 관련한 공시가 강제규정이 아닌 권고규정이다. 모범규준 제정 당시 기업의 부담을 완화하고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재계의 입장을 수용한 결과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이 공시를 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지배구조 모범규준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획일적이라는 점도 참여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은 주주, 이사회, 감사기구, 이해관계자, 시장에 의한 경영감시 등 총 5개장(章)으로 구성돼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항목을 어느 수준까지 이행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그나마 기업지배구조원이 주주권리보호, 이사회, 공시, 감사기구 등 4개 항목 86개 세부평가 기준을 두고 있는 게 전부다. 이에 대해 그간 재계는 "기업마다 영위하는 사업과 역사 등에 따라 '몸에 맞는' 지배구조가 있는데 획일적인 모범규준을 제정해 이를 강제하는 것은 기업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반발해 왔다.삼성전자 관계자는 "지금은 기업 운영이 투명경영과 주주친화, 주주중시 경영을 하기 때문에 자율적으로 공시하는 것이 기업환경을 좋게 만드는 것"이라며 "의무적으로 강제하거나 하는 것은 결국 규제를 하겠다는 것인데 규제 일변도로 나가는 것은 기업의 경쟁력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당국, 재계 반발에도 의무공시 추진= 금융당국은 재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 중 10개 핵심사항을 따로 뽑아 1년에 한 번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할 계획이다. 지난해 기업 지배구조 관련 문제가 잇달아 불거져 제도 개선과 관련한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됐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10개 핵심공시 사항에는 ▲주주총회 정보 제공 및 공평한 의결권 부여 ▲동등한 기업정보 제공 ▲경영진 감독을 위한 이사회 구성 ▲사외이사 독립성 보장 ▲임원보수 공개 ▲경영권 승계 등의 항목이 포함될 전망이다.오덕교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코리아디스카운트 현상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가 기업 지배구조의 취약함으로 지적되고 있다"며 "지배구조 관련 공시를 보다 적극적으로 하도록 유도해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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