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div class="break_mod">‘법조 X파일’은 흥미로운 내용의 법원 판결이나 검찰 수사결과를 둘러싼 뒷얘기 등을 해설기사나 취재후기 형식으로 전하는 코너입니다.
“아야, 오함마 준비해야 쓰겄다.” 영화 ‘타짜’에서 전설적인 도박꾼 ‘아귀(김윤석 역)’는 비릿한 미소와 함께 살벌한 대사를 날렸다. 함부로 ‘손장난’을 치다가는 소위 오함마로 불리는 ‘슬레지해머(sledgehammer)’로 손을 짓이겨놓는다는 내용이다. 국민적인 놀이로 평가받는 화투, 동네마다 기술(?) 좋다는 선수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름 동네에서는 ‘선수’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전국구 ‘타짜’와 만나면 승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탁월한 눈썰미와 판단 능력만으로는 전국구 선수들의 고급 기술을 이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 ‘타짜’에서 나오는 평경장(백윤식 역) 수준의 전설적인 고수들은 대단한 손기술로 화려한 전적을 쌓아 갔다. 요즘에는 그 시절 ‘타짜’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신기술들이 나오고 있다.
'타짜-신의 손' 포스터
이른바 타짜도 속을 수밖에 없다는 신기술, 그중 하나는 대전지검 서산지청이 지난해 2월 발표한 사건 조사결과에 담겨 있다. 검찰은 사기도박단 7명을 기소한 뒤 ‘사기도박’에 사용된 화투를 제작한 2명을 추가로 기소했다. 사기도박 제조자들이 들고나온 기술은 이른바 ‘적외선 카드’다. 제작업자 A씨와 B씨는 인천 주택가 원룸에서 적외선 염료를 배합한 특수염료를 통해 화투를 제작했다. 이들은 컴퓨터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프린트하는 방식으로 사기도박용 화투를 제작했다. 이들은 은밀하게 적외선 화투를 제작했고, 택배나 고속버스 소화물 배송을 통해 5년에 걸쳐 10억 원이 넘는 사기도박용 제품을 유통했다. 적외선 카드를 받은 사기도박단들은 도박장에 적외선 필터가 삽입된 특수 소형 카메라를 설치한 뒤 확보한 영상 결과를 도박에 직접 참여하는 선수들에게 ‘무선수신기’를 통해 전송하는 수법으로 사기도박을 진행했다. 검찰은 “수개월간 특수염료 혼합 실험을 한 결과 타짜들도 육안이나 촉감으로 쉽게 판별하기 어려운 소위 ‘품질’ 좋은 적외선카드를 제작하는데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2014년 수원지검 강력부가 적발한 사기도박용 카드 사건도 유사한 방법이 동원됐다. 사기도박 카드 제조 사범 C씨는 인쇄기 등을 갖춘 공장을 마련한 뒤 카드 뒷면에 특수 형광 안료로 무늬와 숫자를 표시한 제품을 제작했다. 이를 식별할 수 있는 특수 콘택트렌즈도 준비해 세트로 판매했다. 사기도박용 카드와 특수 콘택트렌즈 1조(2개) 한 세트 가격은 25만~30만 원에 불과했다. 이들이 사기도박용 카드를 통해 5년에 걸쳐 19억 원에 이르는 돈을 번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차명계좌로 거래하고 공장 입구에 CCTV를 설치해 출입자를 감시했다. 현관에 2중 철문을 설치하는 등 은밀하게 영업했다”면서 “사기도박 사건은 현장에서 적발되는 예가 드물고, 적발되더라도 범행도구 유통경로 파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
특급호텔 카지노 운영자가 사기도박에 연루된 사건도 있다. 울산지검은 2014년 6월 특급호텔 카지노에서 장기간에 걸쳐 ‘블랙 딜러’를 이용해 사기도박을 진행한 혐의로 카지노 회장 등 관계자들을 구속기소했다. ‘블랙 딜러’는 조작된 카드를 이용해 고객을 상대로 사기도박을 하는 딜러를 의미한다. 블랙 딜러는 순서가 조작된 카드세트로 게임을 하면서 중간 중간 ‘밑장빼기’를 하는 방법으로 승부를 조작해 25억1000만원에 이르는 돈을 가로챈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미국, 호주, 마카오, 싱가포르 등은 순서가 조작된 카드세트의 사용을 방지하기 위해 딜러가 직접 고객 앞에서 카드를 섞거나 또는 기계를 이용해 카드를 섞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박의 기본은 같은 확률인데 ‘확률 조작’을 통해 특정인이 일방적으로 승리할 수밖에 없는 결과물 만들어내는 게 ‘사기도박’의 수법이다. 아무리 화투 실력이 뛰어나도 사기도박 조직에 걸리면 100%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사기도박 수법은 날로 지능화되고 있다. 지금도 전국 어딘가의 도박 현장에서는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불공정 게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와 다른 점은 화려한 손기술(?) 연마보다는 ‘과학의 힘’을 빌어 100% 승률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회부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