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무식한 소리지만 디즈니 만화영화 '토이 스토리'를 보기 전까지는 달에 간 우주선은 아폴로 1호, 달에 발을 디딘 우주인은 닐 암스트롱뿐인 줄 알았다. 토이 스토리에 나온 버즈가 닐 암스트롱과 함께 달에 내린 버즈 올드린에서 이름을 따온 것을 알고 그제야 '누가'가 아니라 '누구들이' 달에 갔는지 궁금해졌다.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1호에는 암스트롱과 올드린 외에 모선을 조종한 콜린스까지 세 명이 타고 있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아폴로 프로그램은 냉전이 가속화된 1960년대 소련의 우주과학기술에 충격을 받고 케네디가 60년대가 끝나기 전까지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선언으로 시작된 유인 달탐사사업이다. 달 착륙에 성공한 아폴로호는 사고로 귀환한 13호를 제외한 11호에서 17호까지 모두 여섯으로 달 표면을 걸은 우주인은 12명이다. 그 외에 달에 발을 딛지는 않았지만 콜린스처럼 모선 조종 등의 역할로 달까지 날아간 우주인이 또 12명이다.이 두 그룹을 합치면 총 24명으로 모두가 화려한 경력의 파일럿인데 왜 암스트롱이 '간택'됐을까. 여기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암스트롱이 당시 달 착륙 우주인 후보자 중 가장 뛰어난 역량을 지녀서 경쟁을 통해 선발되었다는 것이다. 미 우주항공국(NASA)의 최초 우주인 그룹은 '오리지널 7'으로 불리는 7명이었는데 우주프로그램이 확대되면서 9명의 두 번째 그룹이 형성됐다. 그 후로 계속 늘었는데, 로켓 제작, 달탐사선 장착, 달궤도 진입 등 일련의 미션 중에서 달 착륙을 시도할 무렵에는 오리지널 7 우주인들은 모두 은퇴했고 두 번째 그룹이 가장 시니어였다. 아폴로 11호를 포함해 그 이후의 아폴로호 우주인 중에는 암스트롱이 유일하게 두 번째 그룹 멤버로서 그만큼 역량과 경험이 풍부했음이 반증된다. 또 하나는 암스트롱이 당시 후보자 중 유일한 민간인이었기 때문에 선택됐다는 설도 있다. 순수한 민간인을 보냄으로써 우주가 인류의 평화적 보고임을 강조하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것이다.그런데 최근에 읽은 앤드류 차이킨의 '달에 내린 사람(A Man on the Moon)'에 의하면 이 두 가지 설이 모두 틀렸다. 아폴로 프로그램 우주인 배정은 오리지널 7 멤버였던 도널드 슬레이튼이 맡았는데 슬레이튼의 우주인 배정 규칙은 이랬다. 각 아폴로호마다 주멤버 3인, 보조멤버 3인이 배정되는데 특별한 사고나 문제가 없으면 보조멤버는 그 다음 호의 주멤버가 되는 것이다. 아폴로 11호가 최초의 달 착륙선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주변에서 일종의 정치적 압력과 로비가 있었다. 최초의 달 착륙 우주인이라는 의의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해진 규칙을 잠시 접어두고 상징성이 큰 우주인을 선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우주인들 사이에도 상당한 경쟁과 암투가 벌어졌다. 최초의 달착륙이라는 타이틀을 두고 외부와 연계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슬레이튼은 과연 '최초의 달착륙'이라는 상징성과 효용성을 위해 오랫동안 우주인들 사이에 정해진 규칙을 저버리는 것이 맞는지 자문하고는 아무래도 그것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이 규칙대로 하면 암스트롱 순서가 아니었지만 암스트롱이 맡게 된 것은 아폴로 8호의 미션이 갑자기 변화했기 때문이었다. 1968년 발사된 아폴로 8호는 원래 지구궤도에 머무르는 수준이었는데 달궤도를 도는 미션으로 급물살을 타게 됐다. 주지하다시피 1968년은 미국이 베트남전 수렁에 빠지고 킹 목사가 암살당하는 등 정치적으로 어수선한 때였다. 누구도 달탐사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질 상황이 아니었다.NASA는 아폴로 8호 미션의 난이도를 획기적으로 높여 처음으로 달궤도에 진입하는 과제를 부여함으로써 달탐사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다시 얻고자 했다. 미션의 난이도가 바뀌다 보니 슬레이튼은 그 리스크를 감당하겠다고 자원하는 우주인을 찾게 됐고 프랭크 보만이라는 두 번째 그룹 우주인이 아폴로 8호를 이끌게 되면서 순서가 달라지게 됐다. 결과적으로 아폴로 12호에 탈 예정이었던 암스트롱이 11호에 타게 되었다. 한마디로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을 밟게 된 것은 정해진 규칙과 동시에 정치적 우연의 결과였다.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