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내믹 코리아.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활기찬 코리아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시장이다. 그래서 한 해를 시작하는 달에는 활력 넘치는 시장으로 가서 사람 사는 냄새를 맡고 와야 비로소 한 해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보물섬들이 남해 바다에 흩뿌려져 있고 어딜 가나 바다가 보이는 통영에도 시장이 있다. 볼거리, 먹을거리 풍부한 시장 구경에 앞서 우선은 복잡한 생각들로 더부룩해진 마음부터 비우게 하는 이순신공원 산책 먼저!
남해안을 돌다 보면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지긋지긋해진다. 이른바 이순신 마케팅에 열을 올린 후유증이다. 김연아 선수처럼 안티가 적은 위인이다 보니 각 지자체에서는 어떻게든 이순신이란 이름을 붙여 관광 흥행에 덕을 보자는 심산이겠지. 통영의 이순신공원이 정말 좋다는 후배의 제보를 듣고도 시큰둥했다. 그런데 이순신공원에서 칭찬에 춤을 추는 고래와 같은 사람을 보았다. 동행인은 나르시즘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인데 봄날의 이순신공원에 반해 생애 기록적인 기념사진을 찍어댔으니.
뭐가 그리 좋은가 하면 보물섬이라고 부르면 좋을 한려수도의 섬들을 바라보며 푸른 바다를 눈에 담으며 산책과 사색을 즐길 수 있어서다. 게다가 이순신 장군 하면 떠오르는 한산도대첩. 그 역사의 섬 한산도도 눈에 들어온다. 이방인에게는 그런 공원인데, 통영 사람들에게는 동네 뒷동산처럼 친근한 공간인 듯했다. 푸른 바다 앞 푸른 초원에서 아이들과 부모들이 공놀이를 즐기던 어느 해 봄날의 풍경. 세상에 이리 아름답고 포근하며 부러운 공원이 또 있을까! 이순신 장군을 닮았는지 정말 궁금해지는 동상이 그곳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통영은 ‘경상도의 전주’라 불리기도 하는데 그만큼 먹거리가 사시사철 풍부하다는 뜻이다. 통영에서 시장을 구경하려면 ‘아침 서호, 오후 중앙’을 기억해야 한다. 서호는 아침 일찍 시작되고 중앙은 정오쯤 되어야 활기를 띤다. 서호시장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중앙시장에 닿는다. 중앙 시장 옆에는 중앙활어시장이 자리한다. 팔딱팔딱 뛰는 생선 좌판이 관광객들의 입맛 잡기에 앞장서고 회에 곁들이는 채소며 초장을 파는 가게가 슬며시 뒤를 따른다. 재미있는 것은 좌판에도 상도라는 것이 있어 생선을 파는 좌판과 멍게나 해삼 등 해산물을 파는 좌판으로 나뉘어 있다.
하나 더 통영에서 발견한 시장의 법칙이 있다. 통영 어머니들은 디스플레이의 여왕이라는 사실. 배추나 상추 잎 한 장도 미스코리아 대회에 내보내는 딸처럼 정성스럽게 장식해 판다. 결정판은 마른 생선이다. 마치 탑을 쌓은 듯한 자태에 혀를 내두르게 한다. 다보탑이나 석가탑이 울고 갈 것만 같다.
시장의 숨은 명물은 빼대기다. 고구마를 말린 것으로 통영 사람들이 즐겨 먹는 간식거리라 한다(뚱보할매김밥집 근처에는 얼굴이 하얘서 두부띠라는 별명을 가진 아주머니가 끓여내는 빼대기죽집도 있다). 집에서 농사 지어 말린 빼대기를 봉지 봉지 싸 들고 와 수줍게 파는 통영 어머니들도 만날 수 있다.
통영에는 이름난 시장이 여럿 있다.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것은 서호시장과 중앙시장. 기억했다가도 금세 잊어버려 애를 먹곤 하는데 이렇게 기억하면 된다. 강구안 맞은편, 거북선이 둥둥 떠 있는 쪽의 시장은 주로 관광객이 찾는 중앙시장이고, 통영항과 여객선 터미널 근처에는 통영 아낙들이 장을 보는 서호시장이 자리한다.
서호시장은 원래 일제강점기에 바다를 매립한 터로 일본에서 돌아온 동포들이 하꼬방(판잣집)을 짓고 살던 거주지였다고 한다. 노점 행상을 했던 동포들은 이른 새벽부터 아침까지 이곳에서 좌판을 열었는데, 뱃사람과 항구 노동자를 위한 밥집과 새참거리를 파는 집들이 자연스럽게 생기고 고깃배의 물건이 모이면서 통영의 명물이 됐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해산물로 멸치와 장어, 인근 바다에서 양식하는 굴과 멍게가 유명하다. 오래된 시장이니 허름하지만 수십 년을 이어온 맛집도 제법 많다. 도다리쑥국에 반한 분소식당, 통영을 찾을 때마다 밥 한술 뜨고 오는 원조시락국 등 시장에 밥 먹으러 간다는 소리 들을 정도로 통영을 대표할 만한 밥집이 즐비하다. 서호시장의 시락국은 안도현 시인에 의해 ‘통영 서호시장 시락국’이란 시로 탄생되기도 했다.
관광객들은 충무김밥, 꿀빵, 성게비빔밥에 혹하지만 나는 그런 곳은 한 번이면 족하다며 어시장의 작은 식당을 전전한다. 요 몇 년 내가 빠진 식당은 원조시락국집이다. 2대째 운영하는 오래된 집이라 시장에서 물으면 누구나 일러준다. 이 집을 시작으로 시락국 골목이 형성되었을 정도이니 통영에서는 시락국, 즉 시래깃국은 이제 문화가 됐다.
메뉴판도 없는 식당의 간이의자에 앉아 10여 가지 남짓한 냉장 반찬통에서 원하는 만큼씩 셀프로 반찬을 담았다. 겉절이, 무생채, 깻잎장아찌, 멸치볶음, 젓갈들. 통영 식당은 반찬 인심이 푸짐하다는데 이 집 역시 그러하다. 반찬을 덜고 물을 가져오니 곧 펄펄 끓는 뚝배기와 스뎅 밥그릇이 식객 앞에 놓였다. 하루에도 수백 번은 되풀이하는지 녹음기처럼 이어지는 재빠른 설명(단골들은 제외다). “제피 좀 넣고 정구지도 듬뿍 넣으이소.” 주인은 장어를 열 시간 이상 우려 된장을 풀고 무청을 넣어 끓인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는 부추만 넣어 슴슴한 맛을 즐기다가 반쯤 먹다가 제피(초피 가루)를 넣고 먹는다. 청양고추를 넣어도 좋다. 주린 배를 채우고 나면 다시 드르륵 문을 열어젖히고 시장 구경에 나선다.
* 소곤소곤 Tip
통영 사람들이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 미륵산으로 내려온다고 믿었다. 그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는 1975미터의 통영 한려수도 케이블카가 오르락내리락한다. 날이 좋으면 머나먼 대마도까지 눈에 담을 수 있다고 들었다. 정지용 시인조차 “통영과 한산도 일대 풍경 자연미를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라고 하니, 남은 이야기는 하나다. 미륵불이 내려온다는 미륵산에 올라 신기루처럼 어른거리는 보물섬들을 보시라.
Infomation
통영시청 055-650-4681 //www.utour.go.kr/main/
이순신공원 경남 통영시 멘데산업길 141-9
서호시장 경남 통영시 새터길 42-7
중앙시장·중앙활어시장 경남 통영시 중앙시장1길 14-16(중앙전통시장상인회), 055-650-4680∼2
원조시락국 경남 통영시 새터길 12-10, 055-646-5973, 04:00~18:00
글=책 만드는 여행가, 조경자(//blog.naver.com/travelfoodie), 사진=황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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