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기업 역시 장기적 생존을 전제로 하는 '계속기업(going concern)'의 존재다. 사람이 부지런히 일하지 않으면 살기 힘든 것처럼 기업 역시 부단히 체질을 바꾸고 다가오는 미지의 위험에 대해 선제적으로 적응하지 않으면 장기적 생존을 담보하기 어렵다. 산업의 변화주기 관점에서 볼 때 대체로 10년 정도의 주글라 파동(Juglar's waves)에 따라 호황산업과 불황산업 바뀌게 되고 이 변화의 과정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들의 운명은 도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1950년대는 밀가루와 설탕, 면직 등 원조 물자를 활용한 이른바 '삼백산업'이 인기였고 1960년대는 섬유와 신발 등 경공업이 경제성장의 동력이 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부터는 중동 오일달러를 벌어들인 건설업을 바탕으로 중화학공업의 기초가 이루어졌다. 1980년대 들어서는 섬유와 신발 등 경공업은 추락한 반면 3저(저금리, 저달러, 저유가)의 유리한 조건과 글로벌 호황에 힘입어 조선, 철강, 전자, 화학, 기계 등 중화학공업이 명실공히 한국경제의 주력 산업군으로 성장했다. 때로는 외부적 격변으로 기업들의 생사와 부침이 결정되기도 한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오랫동안 부채의존형으로 몸집을 키워온 한국 대기업들은 평균 부채비율이 400%에 가까웠다. 외환위기와 금융긴축이 계속되자 1997년 한 해 동안에만 30대 그룹 가운데 한보와 기아 등 8개 그룹이 도산하거나 인수합병됐고 그 여파로 억울하게 흑자 도산한 기업들을 포함해 1만7000여개 중소ㆍ중견 기업이 쓰러지는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다음 해에는 한때 재계서열 3, 4위를 기록했던 대우그룹이 외환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재계 지도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그렇다면 2016년이 막 시작된 지금 한국경제와 산업, 기업들은 어떤 상황에 와 있을까? 우선 세계 경제환경이 급변했다. 금융서비스의 롤 모델이었던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야기시킨 장본인이 되었었고 유럽은 재정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으며 한때 '자본주의를 구했다'고 칭송받던 중국은 공급과잉 디플레이션의 진원지가 되어 신년 벽두부터 서킷 브레이커가 걸리는 주가 폭락을 겪었다.변화된 글로벌 경제 환경 때문에 해외의존도가 유난히 높은 한국의 경제와 기업 역시 또 다른 산업재편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과거 10여년간 한국경제의 원동력이 됐던 중화학공업의 추락이 뚜렷하다. 조선과 해운, 철강 산업이 하락하고 에너지가격의 폭락으로 관련산업이 동반하락하고 있다. 명실공히 '국민기업'으로 모두의 자랑거리가 되었던 포스코는 2015년 말 시가총액 상위 10대 종목에서도 밀려나 19위로 추락했다. 인구감소로 건설산업의 미래가 어둡고 반도체와 전자산업의 위치도 낙관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희망의 빛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인 중후장대 산업의 몰락 속에서 기존에는 존재감이 없었던 새로운 별들이 떠오르고 있다. 시가총액 10위권 이내에 아모레퍼시픽(6위)과 LG화학(10위)이 새롭게 올라섰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내수시장을 깊숙이 침투해 시가총액이 24조2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예뻐지고 싶은 중국여성들의 심리를 파고든 고가 화장품 전략이 제대로 먹힌 셈이다. LG화학도 주요 전기차 업체들에 대한 배터리 공급 계약이 성사되면서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기존 화석연료차에서 청정에너지 전기차로 전환되는 시대적 흐름을 읽고 선제적으로 대처한 노력이 빛을 발했다. 작년 한미약품의 약진 등 바이오산업의 등장이나 게임회사들의 글로벌 시장의 성공적 진입도 산업재편의 변화기에 새로운 희망으로 읽힌다. 수출 감소세 속에서도 콘텐츠산업 수출은 21% 이상 급성장 하고 있다. 양지식물의 그늘 속에서 오랫동안 숨죽이고 있다가 숲의 생태계가 변화하면 비로소 나타나는 음지식물처럼 기존의 중후장대 산업의 그늘에 가려 있다가 이제야 재계 지도에 존재감을 드러낸 다른 산업들의 도약이 기대된다. 이들에게서 2016년의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읽는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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