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별거' 부부관계 파탄, 남편 이혼 청구 법원은 불허…부인은 시부모 봉양에 제사까지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div class="break_mod">‘법조 X파일’은 흥미로운 내용의 법원 판결이나 검찰 수사결과를 둘러싼 뒷얘기 등을 해설기사나 취재후기 형식으로 전하는 코너입니다.
KBS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은 이혼 위기에 처한 부부의 갖가지 사연을 보여주며 시청자의 관심을 끌었다. 바람 난 남편과 시부모 등쌀에 눈물겨운 시간을 보내는 ‘며느리’의 사연이 방송되면 전국의 며느리들이 함께 분노하고 ‘권선징악’을 기원한다. 물론 남녀 관계의 복잡 미묘한 측면을 고려할 때 무 자르듯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때도 있다. 이혼 위기는 남편과 부인, 한쪽의 잘못이 아니라 상호 잘못이 원인일 때도 있다. 하지만 양비론은 진짜 문제를 가리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사랑과 전쟁’의 드라마틱한 사연보다 더 파란만장한 실제 사연을 지닌 부부도 있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조희대)가 최근 확정판결한 남편 A(70)씨와 부인 B(67)씨의 사연도 그런 경우다. A씨는 종가의 종손으로서 장래를 약속했던 여성 C씨가 있었다. 하지만 C씨가 자녀를 출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 부모의 반대로 결혼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A씨는 B씨와 1973년 혼인신고를 했고 3명의 자녀를 뒀다. 하지만 혼인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혼인 초부터 외박, 외도 등이 이어졌다. A씨는 3명의 자녀를 둔 상태로 1984년 집을 나가 별거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31년간 별거가 이어졌다. A씨는 1994년 C씨를 만나 20년 이상 동거하고 있다.
[사진=KBS]
부인 B씨는 종갓집 맏며느리로서 A씨가 집을 나간 뒤에도 수년간 한 집에서 시부모를 봉양했다. 2007년까지는 종가의 맏며느리로서 시증조부 제사, 시조부모 제사와 명절 제사를 지냈다. 남편은 바람이 나 떠났지만, 종갓집 맏며느리 역할을 한 셈이다. B씨는 3명의 자녀를 홀로 부양했다. A씨는 생활비나 자녀 양육비를 부담하지 않았다. A씨와 B씨의 부부관계는 이미 파탄났다. A씨는 옛 애인인 C씨와 20년 이상 동거하고 있다. A씨는 B씨를 상대로 재판상 이혼소송을 청구했다. 다시 부부관계를 회복할 가능성이 없으니 재판을 통해 이혼을 허락해 달라는 의미다.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게 타당할까. A씨와 B씨의 사연은 이혼을 둘러싼 핵심 쟁점인 ‘파탄주의’ ‘유책주의’와 맞닿아 있다. 한국은 혼인관계 파탄의 책임이 있는 사람의 재판상 이혼 청구를 허용하지 않는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반면 미국 등 외국은 혼인관계가 회복 불가능한 상황이 될 경우 이혼을 허용해야 한다는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한국도 현실에 맞게 파탄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9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혼인파탄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법적으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 판례를 유지했다. 대법관 7대 6의 의견으로 판결이 나올 만큼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대략 10년 가량은 ‘유책주의’ 판례를 토대로 각 법원의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옳았을까. A씨와 B씨의 사연은 대법원 판결에 대한 하나의 판단 기준이 될 수도 있다. A씨와 B씨는 부부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A씨는 이혼을 원하고 있다. B씨는 이혼을 받아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바른 판단은 무엇일까. 1심은 A씨 손을 들어줬다. 1심은 “부부공동생활 관계의 해소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원고의 유책성도 세월의 경과에 따라 상당 정도 약화되고 원고가 처한 상황에 비춰 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법적 평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이혼 허용 이유를 밝혔다. 1심 판결은 남편의 이혼 허용은 물론이고, 소송비용까지 부인 B씨가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B씨 입장에서 1심 판결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B씨는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B씨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도 “혼인 관계는 더 이상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탄됐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바람난 남편이 청구한 재판상 이혼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혼인관계 파탄에 이르게 된 주된 책임은 결혼 초기부터 잦은 외박과 외도를 해 가정에 소홀하다가 결국 집을 나가버림으로써 피고와 자녀를 악의로 유기한 원고에게 있다”고 설명했다. 2심 재판부는 혼인관계 파탄의 책임이 있는 당사자가 청구한 이혼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책주의’를 토대로 1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은 무엇이었을까. 대법원은 A씨의 이혼청구를 기각한 2심 재판부 판단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혼인관계 파탄의 주된 책임은 원고에게 있다”면서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결국, A씨의 재판상 이혼 청구는 실패로 끝이 났다. A씨는 옛 애인과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며 동거하고 있지만, 그의 법적인 아내는 ‘종갓집 맏며느리’인 B씨다. 만약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9월 유책주의가 아닌 파탄주의를 판례로 채택했다면 A씨의 재판상 이혼청구는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결과가 합당한 것일까. 아니면 이번 결과처럼 A씨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게 타당한 것일까.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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