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제임스 오쇼너시가 '숫자 분석'에 매료되기 시작한 건 고교시절이다. 오쇼너시는 당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에 속했던 30개 기업들의 주요 재무지표를 손으로 기록하며 공통점 찾기에 몰입했다. '숫자'를 잘 읽으면 주식투자에 성공할 수 있다는 지론도 이때 만들어졌다. 오쇼너시가 어린나이에 주식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당시 오쇼너시의 아버지는 벤처캐피탈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오셔너시는 조지타운대학에서 국제경제학과 외교학을 전공하고 1986년 미네소타 대학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은 뒤 그의 아버지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벤처캐피탈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숫자에 대한 그의 호기심이 더욱 강해졌다. 이후 1988년 자신의 이름을 딴 오쇼너시캐피탈을 설립하고 펀드매니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1999년 기술주 열풍이 일었을 때 그는 개인투자자들이 자신만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는 '네트폴리오'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었지만 붐이 가라앉으면서 개업 3년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오쇼너시는 자신의 이름을 딴 오쇼너시자산운용을 설립하기 전까지 2001년부터 6년간 베어스턴스자산운용에서 127억달러를 움직이기도 했다. 그는 개인투자자을 위한 다양한 서적도 출간했다. 그는 1994년에 '최고처럼 투자하기(Invest Like the Best), 1997년 '월스트리트에서는 무엇이 중요한가(What Works on Wall Street)' 1998년 '부자로 은퇴하기(How to Retire Rich), 2006년 '내일의 시장예측(Predicting the Markets of Tomorrow)' 등으로 투자자들에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특히 당시 정설로 통하는 주가수익비율(PER)이 신뢰할 만한 지표가 아니라고 반박한 '월스트리트에서는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책은 업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오쇼너시는 현재 오쇼너시자산운용사의 최고경영자(CEO)이자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로 일한다. 그의 이름을 딴 펀드는 여전히 높은 수익률을 자랑한다. 전일 기준 오셔너시의 'RBC오쇼너시 캐나다 에쿼티펀드'의 6년 수익률은 137%에 달한다. 링컨센터의 챔버뮤직소사이어티의 이사회 의장 역할을 하며 공연예술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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