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t 족쇄가 '풍년거지' 주범3년째 기록적 쌀풍년+식생활변화과잉공급에 올해 쌀값 8% 하락 예고재고 10만t 관리비용만 年 316억원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 쌀농사는 대풍(大豊)인데 농심(農心)은 흉년(凶年)이다. 날이 갈수록 면과 빵, 고기에 밀리면서 쌀이 식탁에서 사라지고 있는 탓이다. 소비가 줄어드니 쌀은 창고에만 수북이 쌓여간다. 시나브로 시장 가격도 추락하고 있다. 일단 정부는 세금을 동원해 떨어지는 쌀 가격을 지탱하고 있다. 하지만 속사정은 복잡하고 해결책 마련도 묘원하다.정부는 올해 쌀 생산량을 약 426만t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424만t보다 2만t(0.4%) 늘어났다. 벼 재배면적은 81만6000㏊에서 79만9000㏊로 2.0%가량 줄었지만 면적당 생산량이 전년 대비 2.5% 증가했기 때문이다.특히 사상최대 풍년을 기록한 2009년에 10아르(1아르=100㎡)당 쌀 534㎏을 생산했는데 올해에는 533㎏을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역대 2위 기록이다. 평년 생산량인 496㎏보다 7.5% 많다. 무엇보다 기상 조건이 좋았다. 여름철 큰 태풍 피해가 없었고 병충해도 심각하지 않았다.풍년이 이어지고 있지만 먹는 쌀의 양은 해마다 줄고 있다. 서구식 식생활과 건강식이 등장하면서부터다. 1인당 밥쌀용 쌀 소비량은 2011년에 71.2㎏에 육박했지만 2012년 69.8㎏, 2013년 67.2㎏로 해마다 낮아졌고 지난해에는 65.1㎏로 떨어졌다. 3년 만에 8.5%나 감소한 것이다. 농촌에서도 쌀농사를 줄여나가고 있지만 쌀 소비 감소 폭을 따라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결국 쌀 재고는 작년 말 87만4000t이었지만 올해에는 135만2000t으로 크게 늘 전망이다. 재고율은 32% 수준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정부가 보는 적정재고율(17~18%)을 크게 웃도는 규모다. 이 가운데 수입 쌀 재고도 51만3000t에 달한다.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서 관세화 유예를 받았지만 그 탓에 1995년 5만1000t이었던 쌀 의무 수입량은 지난해 40만5000t으로 늘었다. 올해부터 쌀 관세화가 적용됐지만 이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40만5000t은 의무적으로 사와야 한다. 쌀 관세화를 일찍 시행했다면 쌀 재고를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쌀 수입을 극렬하게 반대했던 사회적 분위기가 결국 국내에서 쌀이 남아도 외국에서 수입해야만 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특히 2004년 쌀 재협상에서 밥쌀용 쌀을 도입하기로 하면서 작년 수입량의 30%인 12만3000t을 밥쌀용 쌀로 수입했다.과잉 공급으로 올해 수확기 산지 쌀값 역시 지난해보다 하락할 전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는 2015년산 쌀의 수확기 전국 평균 가격이 20㎏당 3만8500원 수준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지난해 수확기 쌀값 4만1837원에 비해 8% 하락한 가격이다. 산지에서 생산된 쌀은 농협이나 민간 미곡종합처리장(RPC)이 매입하게 된다. 수확기에 RPC들은 향후 비수확기 판매를 예상하면서 쌀을 매입해두는데, 정부의 쌀 재고가 많으면 향후 가격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매입에 소극적으로 나선다. 산지 거래가 위축되면서 가격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쌀 재고량이 1% 증가하면 가격은 0.12% 하락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결국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과잉 예상물량 가운데 20만t을 정부가 시장 격리하는 등 공공비축미 36만t, 해외공여용(APTERR) 쌀 3만t 등 59만t을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RPC와 벼건조저장시설(DSC)에도 벼 매입자금을 각각 1000억원씩 지원한다. 세금으로 없는 수요를 만들어낸 셈이다. 그러나 재고로 인한 재정부담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쌀 재고 10만t을 관리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연간 316억원으로 추정된다. 보관료 61억원에 쌀이 오래되면서 약 220억원의 가치가 하락하고 이에 따른 금융비용도 35억원에 달한다.정부는 가공용 쌀 소비를 촉진하는 한편 복지용 쌀 공급을 확대한다는 재고관리대책을 추진키로 했다. 특히 사료용이나 화장품원료 등 신규 수요처를 창출하기 위한 방안도 검토에 착수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 재고를 어떻게 사용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며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사항으로 심사숙고해서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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