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정교과서에 정치·경제학자 참여…문제없나

현행 한국사 검정교과서 8종 (사진=아시아경제DB)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정현진 기자] 정부가 추진 중인 국정 한국사교과서에 역사학자 외에도 정치·경제학자들을 참여시키기로 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역사는 역사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이를 옹호하는 의견은 국정화를 옹호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학계에서 터져나오는 국정교과서 참여 거부선언으로 집필진을 구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비롯된 '꼼수'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앞서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지난 12일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발표에 덧붙여 "현대사가 역사학의 고유 영역인 것처럼 잘못 알려져 있다"며 "이번 (국정 한국사교과서) 서술에는 역사가만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이들을 초빙해서 구성토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국정화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국편의 주장과 달리 지금까지는 역사교과서에 비(非) 역사전공자가 참여한 사례가 거의 없다. 본지가 2003년과 2010년에 발행된 고등학교 국정 국사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집필에 참여한 교수 20명 중 역사·역사교육학 이외 전공자는 한 명도 없었다. 이는 지난해 발행된 검정 한국사교과서 8종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8종의 참여한 집필진 59명(교수 19명·교사 37명·기타 3명) 중 비 역사전공자는 기자 출신인 1명이었다. 모(母) 학문 전공자가 해당 교과목의 교과서를 집필하는 것은 다른 교과도 유사했다. 지난해 발행된 경제교과서 4종의 집필진도 모두 경제학·일반사회교육학 전공자였고, '법과 정치' 교과서 집필진도 모두 법학·정치학·일반사회교육학 등 관련 전공자였다.
그럼에도 미국·일본 등에선 드물지만 역사교과서에 정치·경제학 등 타 학문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가장 많이 활용하는 역사교과서 '미국인들(Americans)'의 저자 구성을 보면 역사학자 뿐 아니라 문화사, 정치사, 제도사학자들도 포함돼 있다"며 "선진국에서 역사는 역사학자의 전유물이라기보다 사회 전반의 문화사로 폭넓게 규정되고 있다"고 말했다.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도 22일 새누리당이 주최한 간담회에서 "국제정치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들이 축적한 현대사 연구성과도 대단히 많다"며 "이분들의 연구성과와 역사학자들이 모여서 만들면 (국정교과서는) 균형적인 역사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역사학·역사교육학계에서는 타 학문 전공자의 참여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수용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학문 간의 방법적 차이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한국역사연구회 회장)는 "경제사를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이 현대사를 서술할 수는 있겠지만, 종합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의 특성상 역사의 맥락을 종합적으로 서술하기 위해선 역사학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생물학 전공자에게 화학교과서를 집필하라는 것과 다름없는 얘기"라고 밝혔다.다른 학계 관계자도 "미국 등 해외에서도 (주요 출판사) 역사교과서 구성에 타 학문 전공자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대표집필은 역사학자들이 하는 것이 상례"라며 "타 학문 전공자들의 역할은 통상 기술내용 검토·조언에 국한된다"고 말했다.또 학계에서는 정치·경제학자의 집필 참여 방침이 '꼼수'라는 지적을 내놓기도 한다. 역사학계 다수가 국정화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집필진을 확보하지 못해 마련한 궁여지책이라는 것이다. 권내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국제연합(UN)은 지난 2013년 권고사항을 통해 역사교육은 역사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며 "역사학계를 좌편향으로 매도하고 배제시키고 나니 다른 학문에서 집필진을 구 할 수 밖에 없는 자가당착에서 비롯된 논리"라고 말했다.김한종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도 "역사는 종합적 학문인 만큼, 정치·경제사학자들이 교과서에 참여해선 안 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며 "지금까지는 정치, 경제, 역사 등 각 학문이 각각의 접근방식이 있는만큼, 모(母) 학문에서 집필을 해 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정치·경제학 등 다양한 학문의 집필진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려면 국정화 대신 검정제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덧붙였다.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회부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사회부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