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화백 두달 전 별세

천경자 화백 별세. 사진=MBC 뉴스화면 캡처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여성화가 천경자 화백이 미국 뉴욕의 맨해튼에 있는 자택에서 두 달 전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천 화백의 딸 이혜선(70) 씨는 "어머니가 2003년 7월 2일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줄곧 병석에 계셨는데 지난해 11월 추수감사절 이후 급격히 몸이 안 좋아지셨다"며 "지난 8월 6일 새벽 5시쯤 현저히 맥박이 떨어지더니 의사가 보는 가운데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돌아가셨다"고 22일 조선일보를 통해 밝혔다. 수 년 간 뉴욕에서 거주해온 천 화백은 국내 미술계와 소식이 끊기면서 1년 전 부터는 생사여부 논란이 있었다. 이씨는 "뉴욕의 한 성당에서 조용하게 장례를 치렀고 한국과 미국 양쪽에 사망 신고를 했으며 시신은 화장했다"고 했다. 그는 또 "지난 8월 중순 서울시 측에 협조를 구해 어머니 유골함을 들고 그림이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상설전시실과 수장고를 한 바퀴 돌고 보내드렸다"고 했다. 사망 사실을 늦게 알린 이유에 대해서는 "경황이 없었고 어머니나 나나 생사 논란, 위작 논란 등으로 마음고생이 심해서 말하지 않았다. 서류상 정리할 것들이 있어 잠시 한국에 들어온 차에 고심 끝에 밝힌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요한 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고, 장소는 언젠가 알려 주겠다"고 천 화백의 유골이 안치된 장소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이 씨가 몇 달 전 미술관에 유골함을 들고 수장고에 다녀갔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 씨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고 확인했다. 그는 "당시 이 씨가 관련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줄 것을 강력 요청했다고 들었다. 개인적인 일이라 본인이 적절한 시점에 밝힐 것으로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립미술관에는 천 화백이 17년 전 기증한 작품 93점이 있다.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60여년에 걸쳐 제작한 작품들이다. 천 화백은 1924년 전남 고흥 출생으로 전남여고를 졸업하고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미술학을 전공했다. 광복 이후 광주 조선대학교 미대 교수를 거쳐 홍익대 미대 동양학과 교수로 일했다. 1952년 피란지인 부산에서 연 개인전에 뱀이 우글거리는 그림 '생태'를 발표해 스타작가 반열에 올랐다. 여인의 한과 환상, 꿈과 고독을 한국화에 담아내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린다. 미술시장에서는 블루칩 작가로 통했다. 그의 작품은 자신을 닮은 여인상과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가 특징이다. 1983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작가로 승승장구 했지만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미인도 위작 사건'을 계기로 절필선언을 했다. 그는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절대 없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천 화백은 1998년 11월 일시 귀국해 자신의 작품들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다시 미국으로 떠난 천 화백은 맏딸인 이 씨와 함께 생활했다. 2003년 뇌출혈로 병상에 누웠고, 외부와의 접촉도 끊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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