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불황기 경제게임의 법칙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경제원론에서 가르치는 첫 번째 원칙 가운데 하나가 경제주체의 동태성이다. 경제주체인 소비자와 기업은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반드시 자신들의 이익에 맞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국가 전체단위로 경제주체들을 일시에 움직이게 만드는 대표적인 정책이 세금이라고 할 수 있다.동태성의 유명한 사례가 영국의 '창문세'와 덴마크의 '비만세' 등이다. 영국 정부는 과거에 부자일수록 집이 크고 창문 수가 많다는 것에 착안해 창문 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과세했다.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는 듯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짐작하는 대로 영국인들의 집에서 창문이 다 없어져 버렸다. 세수가 대폭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가뜩이나 햇볕이 부족한 나라에서 창문이 모조리 없어졌으니 국민건강에도 문제가 생겼다.덴마크 정부는 2011년 치즈나 설탕 등 고도 비만을 야기하는 식품에 비만세를 부과했다. 하지만 국경의 의미가 별로 없는 유럽에서 덴마크 국민들이 인접 국가에 관광을 겸한 쇼핑을 자주 나가는 바람에 관련 산업이 타격을 받아 1년 만에 폐지하고 말았다. 비슷한 일이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에서 보건 및 복지비용이 급증하고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등 돈 쓸 곳은 많은데 불황으로 세수가 감소하자 정부는 세율을 올리는 대신 지하경제를 발본색원한다는 취지로 자영업자와 기업들, 상속 및 증여에 대해 공격적인 탈세 조사에 나섰다. 또 지난해에는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기도 했다. '13월의 보너스'라고 불리면서 연말 인심을 넉넉하게 했던 세제혜택이 사라진 것이다. 신용카드 세액공제 혜택은 크게 줄이는 대신 체크카드 사용혜택을 대폭 늘렸다. 이런 일련의 변화는 논리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 능력에 맞게 세금을 물린다는 응능부담(應能負擔) 원칙에 따라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꾼 것도 맞는 일이며 탈세는 용인해서는 안 되는 불법행위다. 신용카드 부채를 줄이기 위해 세액공제 혜택을 줄인 것도 방향이 맞다. 그런데 경제현실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오랫동안 계속돼 온 '일관성'이라는 게임의 법칙을 깨고 세제와 정책이 동시에 움직였고 이것이 경제의 핵심 축인 가계와 기업을 한꺼번에 자극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불황이라는 결정적인 복병까지 겹치면 경제주체들은 최대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부산하게 움직이게 된다. 가장 큰 부작용은 현금 사용이 대폭 늘어난다는 것이다. 기업이나 대형 자영업, 서비스업체들은 어차피 불황에 잘 안 팔리는 고가의 물품이나 서비스를 현금 받고 대폭 할인해서 제공하게 된다. 할인해 줘도 현금거래로 매출을 줄이면 각종 세금과 카드수수료 등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이 거래에 있어 핵심은 소비자들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신용카드를 쓰면 분납도 가능하고 한 달 후까지 결제를 미룰 수 있으며 연말에 세제혜택도 받는다는 여러 가지 장점을 고려해서 현금 결제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신용카드 세제혜택이 줄어들게 되면 체크카드를 쓰느니 그냥 현금 결제를 선택해 할인을 받으려는 선택을 하게 된다. 2000원, 3000원짜리 물건 팔아 남는 쥐꼬리만 한 이익을 카드 수수료로 내야 하는 영세 자영업자들만 여전히 투명지갑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소비자나 중소기업들 역시 이전에는 관행적으로 묵인해 주던 사안에 대해 공격적인 세무조사가 들어오게 되면 급속히 소문이 퍼지면서 현금을 비축하려는 유인이 강해진다. 5만원권 지폐가 풀리기만 하고 은행으로 돌아오지 않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기업들은 언제 세무조사가 들어올지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사업을 키우기보다는 축소경영을 하게 된다. 성실하게 복식부기를 하고 세금을 제대로 낸 기업들조차 '세법에 대한 해석 차이'를 근거로 세금 폭탄을 맞게 되면 소문은 말 그대로 '괴담' 수준으로 확산된다. 불황기에는 가능한 한 정책변경에 신중해야 한다. 불황만으로도 이미 어려운 상황인데 갑자기 일관성이 깨지고 경제주체들을 한꺼번에 자극하는 것이야말로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높여 위기를 가속화시키는 요인이라는 것이 불황기 경제게임의 법칙인 것이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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