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골 韓銀寺'의 刀닦기…대한민국 '니어 제로' 금리시대 연 그들의 속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시장과 정부 사이 줄타기 1년 보낸 이주열 총재[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밖에서는 '남산골 샌님'에 외골수라고 삐딱하게 바라본다. 엘리트주의와 순혈주의에 매몰됐다는 날선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안에서는 보수적인 관료 조직의 엄숙한 분위기에 너도나도 입조심이다. 게다가 통화정책과 실물경제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은 만만찮은 과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사상 첫 1%대(1.75%)로 낮춘지 20일째.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섰다는 두려움과 막막함, 일말의 기대감이 남대문로 한국은행을 휘감고 있다."크고 무거운 칼 하나 쥐고, 재고 또 재다가 한번씩 쓰는 것인데." 기준 금리 인하에 대한 소회를 물었더니 한은 A 국장은 말을 아꼈다. 유구무언(有口無言). 할 말은 많지만 입을 다무는 것이 한은맨의 운명이다. 속내를 유추하면 답이 나온다. 크고 무거운 칼이란 금리정책이다. 즉, 거시경제 정책이다. 작은 칼(미시경제정책)로 해결해야 할 문제에 매번 큰 칼을 들이대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경제가 좋지 않을 때마다 한은에 곁눈질한다. 구조개혁이나 세수확장 같은 구조적인 문제보다는 금리정책에 기대는 것이다. '큰 칼'은 지지율을 높이고 심리를 개선시키는데 효과가 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구조적인 문제는 쌓여간다. 병이 깊어지는 것이다. 한은 B 과장은 "경제관료나 정치권이 금리정책을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것과 달리 한은은 훨씬 더 긴 시계로 경제를 바라보고 있다"며 정치권의 훈수를 꼬집었다. 거대한 칼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중앙은행 만능주의'에 대한 항변인 것이다. 반대로 독립적인 결정을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부담스럽다. 지난 12일 금리를 인하한 것에 대해 이주열 한은총재는 "성장세가 나빠 선제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정치권의 외압에 굴복한 것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금리 인하 결정 하루 전 나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발언 등 정치권의 훈수가 이어진 탓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이 점을 경계했다. 그는 전날(30일) 마련한 취임 1주년 기념 간담회에서 "통화정책과 관련해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의 언급은 신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립적인 존재이면서도 독립성을 의심받는 상황이 2258명의 한은맨들은 안타깝다. 그들 스스로 "한은이 좋은 직장이긴 하지만 직업으로는 좋진 않다"고 토로하는 것도 그래서다. '을(乙) 없는 갑(甲)'이라는 불만도 있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부탁을 들어줄 일이 없는 반면 외부와 소통할 일이 많지 않아서다. 거시경제 전문가들이지만 중앙은행 직원으로서 '직언'을 하기는 쉽지 않다. 환율이나 채권 시장에 미칠 영향이 커 자료를 해석하는 발언은 되도록 피한다. 한은을 정중동(靜中動)의 공간 혹은 한은사(韓銀寺)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직 한은 관계자는 "돈을 받고 경제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중앙은행 직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일을 하기 힘들다"면서 "권한도 적고 업무량도 많고 관료적인 조직 분위기에 짓눌려 있다"고 털어놨다. 한은 파트너인 기획재정부의 비슷한 연배의 직원들에 비해 권한도 적다.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 사무관은 각각 한국은행 고참 과장, 과장은 한은 2급 팀장 급이다. 김중수 전 총재 시절 유행했던 '발탁ㆍ영입 인사'의 명맥이 남아 있어 승진이 역전돼 연공서열이 무너지는 경우도 잦다. 조사국, 통화정책국 등 핵심부서를 거쳐야만 국장이나 부총재보로 승진이 가능 한 인사 쏠림 현상도 고민이다. 이른바 '조부심'(조사국 자부심)이다. '한은의 혼'이라 불리는 조사국을 선호 부서로 치는 것은 한은법에 '한국은행에 조사부를 둔다'고 명시된 데서 비롯됐다. 1997년 한은법 개정 때 이 조문이 사라졌지만 분위기는 남아 있다.실제로 한은맨들의 직업만족도는 'U'자 곡선을 그린다고 한다. 입사 직후에는 '센트럴 뱅크' 직원으로서 자부심이 높지만, 과장이나 차장 초임 시기, 연수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거나 인력적체로 승진이 좌절되면 직업 만족도가 크게 떨어졌다가 40~50세가 넘으면 정년 60세가 보장돼 만족도 곡선이 올라간다. 그럼에도 한국은행을 직장으로서 선호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2015년도 한국은행 신입행원 모집에는 응시자 4573명이 지원, 76.2대 1을 기록해 직전해 경쟁률 47대 1을 뛰어넘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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