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도 칭송한 女천재가 남긴 것은?

에미 뇌터

[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 "여성의 고등교육이 시작된 이래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이며 창조성이 풍부한 수학의 천재였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추도문 중 일부다. 천재가 '천재'라고 추앙했던 이는 여성 수학자 에미 뇌터다. 23일 구글이 에미 뇌터 탄생 133주년을 기념하는 '두들(Doodle)'을 선보이면서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두들은 구글이 기념일마다 선보이는 로고다.에미 뇌터는 독일의 저명한 수학자였던 막스 뇌터의 딸로 1882년 3월 23일 태어났다. 그의 동생인 프리츠 뇌터도 이름을 남긴 수학자다. 뇌터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당시에도 아버지나 남동생보다 뛰어난 수학자라고 평가 받았는데 이를 설명하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역시 독일의 수학자였던 에드문트 란다우는 뇌터에 대해 "유명 수학자 막스 뇌터의 딸"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에게 "막스 뇌터가 에미 뇌터의 아버지"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에미 뇌터를 "누구의 딸"이라고 설명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뇌터는 에를랑겐-뉘른베르크 대학교에서 청강으로 수업을 듣다가 여성 등록이 허용되자 수학과 학생으로 등록,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뇌터는 괴팅겐 대학에서 강의를 했는데 현대 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다비트 힐베르트 등과 함께 일했다.

2015년 3월 23일 구글이 '두들(기념일 로고)'로 선보인 에미 뇌터.

힐베르트와 관련된 일화도 있는데 당시 괴팅겐 대학은 여성인 뇌터가 강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힐베르트가 그의 이름으로 된 강의를 맡을 수 있도록 했다. 또 교수 임용은 대학 평의원회에서의 투표권을 부여받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뇌터의 임용을 반대하며 그를 공격하든 이들에게 힐베르트는 "교수 후보자의 성별이 자격을 허가하는데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 평의원회는 목욕탕이 아니다"고 일갈했다고 한다. 결국 뇌터는 교수가 될 수 있었다.하지만 나치의 집권 이후 유대인이었던 뇌터는 강의를 할 수 없게 됐고 결국 미국으로 망명한다. 미국에서는 브린 마르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뇌터는 1935년 사망했다. 수학 연구에만 몰두해 평생을 미혼으로 살았던 뇌터는 대칭성과 보존 법칙 사이의 1대 1 대응관계를 나타내는 '뇌터 정리' 등을 남겼으며 이는 이론 물리학 중요 업적으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전해진다. 또 미국의 여성수학협회는 그를 기리기 위해 매년 수학계에 뛰어난 공헌을 한 여성 수학자를 초청해 '에미 뇌터 강좌'라는 대중 강연을 열고 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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