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가족·친족 살해사건…'사회안전망 확충·사회적 신뢰감 확보로 극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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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설 연휴였던 지난 20일 경남 거제시에서 가장 A(35)씨와 가족들이 차량 안에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부검 결과 채무에 시달리던 A씨가 가족들에게 수면 유도제를 먹인 후 살해하고, 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버블세븐'의 핵심지역인 서울 서초구 고급 아파트에서도 가족살해 사건이 벌어졌다. 1월6일 가장 강모(48)씨가 아내(44)와 두 딸을 목졸라 살해했다. 강씨는 2012년 직장을 그만 둔 후 주식투자에 나섰지만, 3억7000만원을 잃게 되자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됐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탄탄대로를 걸어온 엘리트였던 강씨는 '희망이 없다'는 이유로 한 순간에 가정을 파괴했다. 25일 세종시에서 발생한 엽기적 총기 살해 사건을 계기로 급증하는 가족 살해사건에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최악으로 꼽을 수 있는 친족 살해사건까지 잇따르고 있어 그 원인과 해법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여론을 보면 인륜 상실 등의 덕목을 들어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그 근본적 배경을 돌아보고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소득 양극화 현상에 따라 절대적으로 혹은 상대적으로 궁핍한 계층에서 사건이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어서다. 이에 경제적 실패를 딛고 회복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 구축과 함께 사회적 신뢰 확보를 위한 공동체 회복ㆍ가족관계 재구성 등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사례를 든 '거제 일가족 사망사고'와 '서초 세 모녀 살인 사건'에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공통점이 있다. 두 가정 모두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가장이 아내와 자녀들을 살해했다는 점이다. 거제 사고 가장은 1억5000만원의 채무, 서초 가장은 3억7000만원의 투자 손실을 입었던 것으로 나타났다.이에 일가족 살해는 패륜적 개인의 일탈로 몰아붙이기 힘든 측면이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서울경찰청 과학수사계 소속 정성국 박사의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 논문에 따르면 2006년~2013년3월까지 발생한 자식 살해 사건은 총 230건에 달했다. 이중 살인을 저지른 부모의 77%는 경제활동에 적극적인 30~40대였다. 피해 자녀의 58%가 10세 미만 아동이었다. 특히 채무 및 사업ㆍ투자실패 등 경제문제가 원인이 된 비율은 27%(62건)나 됐다. 일반 존속살해(자녀가 친족을 살해하는 경우)의 15%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박형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반적인 가족 살해 사건의 경우 정서적 갈등이 원인인 경우가 많지만 경제적 위기ㆍ부양부담 등으로 인해 촉발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또 "특히 가장들이 범행을 저지른 경우 '내가 없으면 피부양가족을 보호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미성년 가족이나 부양 가족들을 살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이같은 일가족 살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재기를 어렵게 하는 미비한 사회안전망 확충과 붕괴한 '정상가족' 모델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40~50대 가장들은 평생 가족을 건사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양극화 속에서 삶의 토대마저 붕괴돼 있다"며 "실패할 경우 재기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신뢰가 없다보니 가장들이 '내가 죽으면 아내와 자식들이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인식으로 그릇된 선택을 하게 된다"고 진단했다.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공공부조 확대와 함께 극단적 위기에서 재기할 수 있는 회생ㆍ파산제도 등 사회적 구제장치를 좀 더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며 "또 '성공'에만 매몰 돼 있는 국정기조와 전반적 사회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최근 확산되고 있는 공동체ㆍ협동조합처럼 위기에 처했을 때 가족 이외의 공동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기능을 상실한 정상가족 모델 외 비혼가정ㆍ동거관계에서도 유대감을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가족관계에 대한 구성권도 더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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