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의 '자화자찬' 신뢰감 갖기 쉬워…왜곡된 정보 양산면대면 대화 속에 공감대 형성…시장 쏠림현상 심화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 "내가 이번에 오피스텔 당첨됐잖아. 경쟁률이 굉장했는데, 벌써 프리미엄만 몇천이 붙었어. 지금도 중개업소에서 분양권 넘기라고 전화가 계속 오는데, 잘 들고 있다 월세 받아야지. 언니도 뭔가 노후대책 해놔야 하지 않겠수?"부동산 투자 열기가 한창이던 지난 2007년 김모(64·여) 씨는 덜컥 인천 송도의 한 오피스텔을 계약했다. 은행 대출을 받고 남편의 퇴직금까지 미리 정산해 2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 명절에 만난 친척동생의 자랑 섞인 조언이 투자 결심을 굳힌 계기가 됐다. 평소 재테크 수완이 좋기로 소문난 동생은 김씨 뿐 아니라 다른 친척들에게도 은근히 부러움을 샀다.하지만 김씨의 투자는 완전히 실패였다. 뒤늦게 막차라도 올라타야 한다는 심정에 웃돈까지 얹어주고 산 오피스텔 분양권은 이듬해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가격이 뚝뚝 떨어졌다. 투자수익은 커녕 원금의 20%가 넘는 손실을 보고서야 간신히 되팔 수 있었다. 그동안의 이자비용은 물론 마음고생도 심해 멀쩡하던 치아가 두 개나 빠져버렸다.김씨는 "여윳돈이 있는 동생과 달리 은행빚까지 끌어다 쓴 나로서는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심정이었다"며 "괜시리 원망스러운 마음에 다른 친척들 얼굴 보기도 서먹해졌다"고 토로했다.# "처남은 요새 뉴스도 안봤어? 앞으로 집값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인구는 줄어드는데 아파트는 계속 짓고 있잖아. 나도 조만간 집 팔고 전세로 옮겨갈꺼야." 직장인 박모(36·남) 씨는 2년 전 결혼 당시 집 장만을 미뤘던 일을 후회중이다. 양가의 도움을 받아 서울시내 작은 아파트 전세를 마련할 수 있었기에 이왕이면 대출을 좀 받아 아파트를 매매할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결혼식을 앞둔 설날, 예비 처가댁에서 이같은 말을 꺼냈다 온가족 앞에서 형님으로부터 핀잔만 듣고 이내 마음을 접었다. 이후 3억3000만원 짜리 전세는 5000만원 이상 올랐다. 며칠 전 만기를 앞두고 집주인은 전세를 4억원으로 올려주거나 반전세로 하자고 통보해 온 상태다.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이 아파트 매매가격은 2년 전 4억8000만원에서 최근 5억1000만원으로 전세보다 오히려 덜 올랐다. 박씨는 "전세금 올려줄 돈도 부족한데 인근엔 아예 전세물건 자체가 없어 이사를 하고 싶어도 집을 구할 수 없은 상황"이라며 "아내 앞에서 '그 때 형님이 말리지만 않았어도 집을 샀을텐데…'라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한바탕 큰 싸움을 했다"고 털어놨다.명절에 만난 친인척들이 부동산을 사서 큰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귀가 솔깃해지기 마련이다. 모르는 사람보다 피가 섞인 가까운 사람의 말을 더 신뢰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다 핸드폰이나 SNS와 같은 통신수단이 아닌 얼굴을 마주하고 직접 이야기가 전해지다 보니 그 영향력은 더 막강해진다.하지만 친인척이 제공하는 정보 역시 확인되거나 정제되지 않은 '카더라 통신'에 그칠 수 있다. 입소문으로 부풀려진 다른 사람의 재테크 성공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이미 시간이 흐르고 오를 대로 올라 투자하기에 늦었을 가능성이 높다.투자 과정이 적법하지 않고 윤리적이지 않다면 제아무리 성공한 투자라 할지라도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없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저서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동산을 구매할 때 가족이나 친지의 이야기와 같은 비합리적인 정보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특히 명절과 같이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오가는 대화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하나의 집단적 힘으로 나타날 때 사회 전반의 쏠림현상으로 이어지면서 부동산 시장에서는 거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거나, 침체가 가속화된다는 분석이다.박 위원은 "친척들의 말 또한 참고할 만한 여러 부동산 정보 중 하나에 불과하다"며 "다른 이의 재테크 성공담이 반드시 당신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라"고 조언했다.
건설부동산부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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