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의 회장과 계열 은행장이 불명예 퇴진하고 금융감독원장까지 물러나게 한 'KB금융 주전산기 파문'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나. 책임질 곳은 어디고, 책임질 사람은 누군가.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보면서 떠오른 의문이다. 주인 없는 은행의 낙하산 인사, 내부 권력 다툼, 금융당국의 무리한 대응이 어우러진 이번 사태의 허무한 결말에서 한국 금융의 부끄러운 얼굴을 다시 보게 된다. 검찰은 어제 KB금융 은행 전산시스템 사업자 선정과정에서의 비리 혐의로 금감원이 고발한 임 전 회장에 대해 '아무런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다. 그렇다면 KB금융의 내분은 왜 벌어졌는지, 금융당국은 왜 그렇게 임 전 회장을 쫓아내려 했는지 궁금해진다. 임 전 회장에 대한 징계 수위를 번복하면서 퇴진을 압박하고 급기야 검찰 고발로까지 끌고 가 사태 해결을 지연시킨 금융당국의 책임론이 다시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KB금융 사태는 임 전 회장과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의 마찰이 진원지다. 이 전 행장이 전산기 교체 과정을 문제 삼아 금감원에 특별검사를 요청하면서 불똥은 KB금융 밖으로 튀었고 이후 냉온탕을 오가는 금융당국의 대응으로 파문이 확대됐다. 두 사람에 대한 처벌이 중징계, 경징계, 중징계로 반전을 거듭했고, 금융당국의 퇴진 압박과 임 전 회장의 버티기가 충돌하며 고발로 이어졌다. 돌아보면 회장과 은행장이 맞선 KB금융 사태는 우리 금융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 낙하산 인사 논란이다. 임 전 회장은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낸 '모피아' 출신이고, 이 전 행장은 학자 출신이지만 '권력 배경설'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의 주도권 다툼이 최고경영자 간 충돌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불렀다. 정부 지분이 없는 KB금융에서 낙하산 인사 논란이 제기된 것은 큰 문제다. 내부 권력싸움도 그 후유증이라 할 수 있다. 징계수위 뒤집기에서 사퇴압박-고발-무혐의 처분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관치금융의 그림자가 드러났다. 초대형 금융그룹에서 벌어진 이번 사태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한국 금융의 미래는 어둡다. 금융회사는 물론 금융당국도 반성하고 바로 서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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