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 드라마의 묘미는 반전이다. 누구나 예상할 결론은 시큰둥한 반응만 부를 뿐이다. '반전의 미학'은 검찰에도 필요하지 않을까. 지난해 선보인 '검찰 수사 드라마'는 뻔한 결론의 연속이었다. 특히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 한없이 순한 양이 돼 버리는 검찰의 위축된 모습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정윤회 동향 문건' 수사를 놓고 "이번에는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검찰 입장에서 이번 사건은 그동안의 실책을 만회할 기회였다. 그런데 검찰이 본격 수사에 나서기도 전에 '수사 가이드라인' 논란이 불거졌다. 청와대는 정윤회 문건을 '지라시' 수준이라고 일축하면서 문건유출 행위를 '국기 문란'으로 규정했다. 검찰이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려면 수사 가이드라인의 덫을 스스로 빠져나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이 수사결과를 발표할 1월5일을 앞두고 여론의 시선은 검찰 발표에 집중됐다. 방송사 생중계로 내보낸 검찰 발표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정윤회 문건 내용은 풍문을 과장·짜깁기한 것이다." "'박지만 미행설'은 근거 없이 생성·유포된 풍문에 불과하다." 수사 가이드라인 그대로 검찰 발표가 나왔다. 여론은 차갑게 식었다. 검찰을 향한 '혹시나'에 대한 기대는 '역시나'로 바뀌었다. 반전도 감동도 없는 뻔한 결론이다.
검찰이 실체규명에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미흡한 것이라면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철저하지도 예리하지도 못했다. 이른바 '십상시' 모임을 사실무근으로 결론지은 뒤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을 덮느라 바빴다. '진술 받아쓰기' 수사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검찰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허위 문건' 파동의 주범으로 몰았지만 범행 동기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박지만 EG 회장은 청와대 문건을 계속 받았지만 처벌 대상에서는 제외됐다. 검찰은 박 회장이 부당하게 정보를 습득하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일반인에 불과한 박 회장이 청와대 공식문건을 받은 행위를 설명하기에는 궁색하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검찰 발표는 풍문을 잠재우기는커녕 의혹의 불씨만 살려 놓았다. 이번 수사를 통해 문건을 둘러싼 의혹을 말끔히 해소했다면 풍문이 끼어들 틈이 없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검찰이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짙게 남겼다. 비선실세 논란이라는 핵심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이런 결과가 수사를 담당한 검사들의 실력 부족 때문이겠는가.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와 특수부가 그렇게 허술한 곳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의혹의 실체를 파헤칠 실력은 충분하다. 살아 있는 권력과 관련한 사안에서만 그 실력이 발휘되지 않는 게 문제다. 어쩌면 살아 있는 권력 앞의 '몸 사리기'는 의도된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권력 입맛에 부응하는 수사 결과물을 내놓은 선배 검사들은 어떻게 됐을까.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쓸쓸히 검찰을 떠났을까, 아니면 보란 듯이 승진 가도를 달렸을까. 검찰은 사회정의 수호자를 자처하지만, 정작 내부에서는 정의를 지키려는 이들보다 권력의 풍향계에 따라 움직이는 이들이 대우 받는 모습이었다. '국민의 눈'보다는 '권력의 눈'에 시선을 맞춘 검사들의 영전(榮轉)이 오늘의 검찰을 만든 배경 아니겠는가.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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