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문제 논란에 '교과서가 잘못' 해명…일부 출제위원들, 검토위원의 문제 제기 달가워하지 않아
[아시아경제 이윤주 기자] 수능 세계지리 출제 오류 논란과 관련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의 대응 방식이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문제에 이상이 없다'고 했던 1심 판결을 뒤집는 결과가 나오면서 소송전으로 비화하기 전에 문제를 바로잡지 않은 데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는데도 상고 여부도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또 문제가 이렇게 커지기까지는 평가원 내부의 경직되고 안이한 분위기가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평가원이 이번 논란에 대처하는 방식에서 가장 크게 지적되는 것은 '이중잣대' 문제다. 평가원은 1998년 수능 화학에서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이의가 제기됐을 때 일부 교과서에 기재된 내용이 잘못됐다며 실제 사실이 중요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때 학생들과 교사, 화학자들 사이에서 '교육당국이 평소 교과서에 충실하라고 강조하면서 교과서와 다르게 해명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난이 속출했다. 이번에 '현행 교과서대로 학습했으면 맞힐 수 있었다'고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논리를 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문제에 오류 여지가 있음을 검토 과정에서 걸러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류 논란이 커지는데도 평가원 위상에 흠집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자기 논리'를 합리화하기에 급급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평가원이 이처럼 비난 여론을 외면하고 있는 데에는 평가원의 경직된 내부 분위기가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수능 출제는 교수 60%, 교사 40% 비율로 구성된 출제위원들이 문제를 내면 교사들로만 구성된 검토위원과 다른 과목 출제진이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능 출제에 참여한 바 있는 A교사는 평가원에서는 검토위원이 출제위원에게 거리낌 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데 한계가 있는 분위기였다고 지적했다. A교사는 "출제위원들이 낸 문제가 지나치게 이론적인 경우 검토위원 가운데서도 제대로 풀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출제위원은 오히려 검토위원의 역량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반응해 검토위원들이 전체적으로 위축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일부 출제자들의 경우 본인이 낸 문제에 이의 제기가 들어오는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에 내부에서 문제에 시비가 붙어도 이를 제대로 검토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덧붙였다. 출제위원과 검토위원들이 '학맥'으로 얽혀 있는 것이 오류를 인정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00년대 중반 수능 출제위원으로 참여한 B대학 교수는 "출제위원이나 검토위원 대부분이 서울대 사범대 출신 교수와 교사로 채워지며 교육부나 평가원과도 같은 학맥으로 얽혀 있다"면서 "선후배·동료 의식이 강하니 서로 간에 잘못을 지적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A교사는 "지금처럼 인력구조가 경직된 여건에서는 앞으로도 똑같은 오류를 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받은 자료에 따르면 평가원은 대형 로펌을 선임해 6600만원을 소송비용으로 쓴 것으로 드러나 평가원이 이번 판결에 불복하고 상고할 경우 비난 여론은 '혈세 낭비' 문제로까지 번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윤주 기자 sayyunj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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