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군대를 혁신교육의 장으로 만들라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대한민국 남자들이 일분일초도 있기 싫어하는 장소가 두 군데 있다. 하나는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곳, 감옥이다. 하긴 세상의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갇혀 살고 싶겠는가.  또 하나는 한국 남자가 술만 마시면 화제로 올리는 곳, 바로 군대다. 희한하게도 한국 남자들은 군대라는 공간을 그토록 혐오하고 저주하면서도 막상 제대하면 자신의 경험을 자랑한다. 누구나 자신의 군 생활이 가장 힘들었고 수색대 같은 특수부대에 버금가는 정예 군인이었노라고 선언한다. 왜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에 열중할까. 그것은 감옥처럼 타의에 의해 갇혀 있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일반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많은 '역경'에 직면해 극복하고 헤쳐 온 훈장과도 같은 경험인 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남자라면 백이면 백, 다시 군대 가라면 자살하겠다고 공언하면서도 그 시간이 자신에게 도움이 됐느냐고 물으면 그중 적잖은 이들이 그렇다고 대답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내가 근무하던 대대의 작전장교는 원칙주의자로 절대 부하를 구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대신 잔소리로 처벌을 해서 우리가 무언가 실수하면 몇 시간이고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사단 훈련을 나가 대대본부 텐트를 칠 때였다. 우리 병사들은 항상 그렇듯 대충 배수로를 파는 흉내만 내고 있었다. 일기예보에 큰 비가 온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동안의 훈련에서 배수가 되지 않아 고생한 적도 없었다. 그때 작전장교가 들어왔다. 그는 대뜸 "그것도 배수로라고 파냐"면서 직접 삽을 달라고 해 다시 배수로를 깊게 파 들어갔다. 장교가 시범을 보이니 어쩔 도리가 없어 우리도 오랜만에 허리가 아프도록 작업을 했다.  그런데 그날 밤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랜턴으로 밖을 비춰 보니 빗물이 배수로를 가득 채우고 흐르고 있었다. 깊은 배수로 덕분에 우리 행정병 텐트는 교보재나 담요, 군장 같은 비품들이 물에 침수되는 불상사 없이 편히 잘 수 있었다. 배수로를 제대로 파지 않은 다른 중대 텐트들은 퍼부은 비에 쫄딱 젖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작전장교는 자랑할 법도 하건만 아무런 말도 없이 비 오는 산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새긴 교훈이 있었다. "비가 오지 않을 때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혁신에서 창의력과 아이디어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문제해결에 대한 집착이다. 혁신을 이룩하려면 아이디어를 쥐고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불가결하다. 혁신에서 창의성과 집요함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해야만 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역시 주변에서 편집증 환자라고 부를 정도로 집요했다. 이미 과거가 돼버렸지만 그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PC 리사 개발을 강행해 회사에 막대한 손실은 물론 그 때문에 창업자인 자신이 애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기까지 했다.  한 자녀나 두 자녀의 가정에서 소중하게 자라서 전쟁이나 기근을 겪지 않고 입대한 젊은이들에게 군대는 감옥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좌절감은 때로 주변의 동료나 후임병에게 향하는 것이고 윤일병 사건과 같은 비극도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왜 군대에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군대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를 설명하고 체득시키는 것이다. 단지 '2년을 썩는다'거나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는 식으로 무작정 참다 나가라는 식은 제2, 제3의 윤일병 사건을 부를 수밖에 없다.  군대의 2년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시간이 돼야 한다. 군대에서 병장이 되면 세상의 무엇도 할 수 있다는 묘한 자신감이 생긴다. 그것은 2년이라는 세월 동안 쌓인 문제 해결의 경험이 가져다 주는 자신감이다. 군대의 2년은 혁신의 또 하나 요소인 자신감을 심어주는 시간이 돼야 한다. 가끔씩 그 작전장교가 보고 싶어진다.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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