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은퇴자들
[아시아경제 최창환 대기자] A씨 부부는 막창에 소주 한잔을 기울였다. 6년 전 4억7000만원을 들여 차렸던 가게를 막 정리했다. 빚잔치를 하고 남은 돈은 수천만원에 불과했다. 휴일도 쉬지 않고 일을 한 대가가 빈털털이다. 준비도 부족했지만 망하고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A씨가 소주잔을 채우며 아내를 위로한다. "다시 일어서면 돼." "돈은 잃었지만 아직 건강하잖아." "우리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어." "시원 섭섭하지." 아내는 펄쩍뛴다. "섭섭하긴 뭐가 섭섭해. 시원하지." 미련도 없다. 코가 꿰여 억지로 했는데 코뚜레라도 풀었으니 다행이란 얘기다. A씨는 출판사 사장에게 출판의뢰 메일을 보냈다. '망하고 시작하는 창업이야기'. 책 제목이다. "창업희망자는 생태계의 송사리입니다." "자영업 창업은 건물주, 프랜차이즈본사, 부동산업자, 컨설팅사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입니다." "제가 망해본 경험을 공유해 은퇴자들이 인생이막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례를 줄여봅시다." A씨 부부가 대학로변 100㎡(33평) 카페에 코가 꿴 것은 막대한 초기투자비와 권리금 때문이다. A씨는 임대보증금 1억원, 권리금 1억5000만원, 설비투자 및 인테리어 공사 등 프랜차이즈 본사에 지급하는 비용 2억원, 부동산중계료와 기타 창업비용 2000만원 등 모두 4억7000만원을 창업에 사용했다. 임대보증금 1억원을 빼고는 이미 내 돈이 아니다. 계약기간 2년 안에 회수해야 한다. 불가능하다.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가게문을 열고 불과 2~3개월 뒤에 찾아온다. "사모님 월 1000만원은 벌 수 있어요"라고 꼬드기던 프랜차이즈 본사는 단물을 빨고 난 뒤에는 신경도 안쓴다. 신규 창업자 유치에만 몰두한다. 오픈발(가게문을 연 뒤 장사가 잘 되는 현상)이 떨어져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늦었다. 돌이킬 수 없다. '장사'의 실체를 알아간다. 상인들은 다 같은 상인이 아니다. 젊었을 때부터 잔뼈가 굵은 베테랑과 월급쟁이로 은퇴한 뒤 새 길을 모색하는 신참자로 나눠진다. A씨 부부가 빈털털이가 되고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신참들의 '더 비참한 운명'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A씨의 아내는 오른편 건물의 주점 사장과 왼편 건물의 정육점식당 사장이 궁금하다. 50대 중반 퇴직자인 B사장은 자리마다 TV를 설치하는 신종주점을 준비하며 창업컨설던트와 함께 카페를 들락거렸다. 새 삶에 대한 희망으로 반짝이던 그의 얼굴은 갈수록 누렇게 찌들어 갔다. 임대료도 제 때 낼 처지가 못 된 B씨는 권리금 한 푼 못 받고 나갔다. 고깃집 C사장은 설에 도주했다. 임대보증금은 2금융권에 담보로 잡히고 대출을 받았다. 권리금을 받고 가게를 넘겨봤자 밀린 임대료와 밀린 임금, 외상 고깃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깡통가게가 되자 연휴를 틈타 도망친 것이다. A씨 부부는 '곧 망할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에 비해 잘 버틴 셈이다. 열심히 일해 자그마한 수익이라도 냈다. 특히 건물주를 잘 만났다. 6년간 월세를 올리지 않았다. 인상 요구를 할 때 사정을 설명하니 양해해줬다. 보통 계약은 2년 단위로 연장하기 때문에 나가라면 나가야 한다. 권리금 회수는커녕 추가비용이 들 수도 있다. 계약서에 '권리금은 인정하지 않는다'와 '나갈 때 건물을 원상회복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장사가 잘 되는데 계약종료를 이유로 쫓겨나는 경우가 많다. 투자비 회수를 못했다고 버텨도 건물주가 명도소송을 제기하면 끝이다. 카페, 화장품판매점, 닭갈비집, 중국집이 그렇게 떠났다. 건물주들은 법인에 세 주는 것을 선호한다. 낡은 건물을 고쳐 새 건물로 만들어주고 임대료도 많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회사가 가게를 달라고 하면 기존 사업자를 쫓아내는 사례가 많다. 때문에 장사를 오래하려면 장사만 잘해서는 안된다. 건물주에게 쫓겨나지 않아야 한다. A씨는 다행히 쫓겨나지 않았다. 권리금을 받고 가게를 넘겨줬다. 6년간 월세가 동결됐으니 넉넉히 40% 범위에서 인상될 것으로 생각하고 건물주에게 알렸다.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보증금을 두 배로 올리고 월세는 70%를 올려줘야 한다는 답을 들었다. 새로운 세입자와의 계약이 깨졌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인가 생각할 정도로 안면을 바꾼다. 권리금을 대폭 낮추고 보증금 인상을 줄이는 범위에서 가까스로 새로운 계약자를 찾았다. 그래서 손에 쥔 돈이 2억원. 폐업신고를 했더니 바로 거래은행에서 돈을 상환하라고 연락이 온다. 낡은 기계를 팔려고 하니 구입가의 10%도 쳐주지 않는다. 고급수입품인줄 알았던 기계가 국산인 경우도 있다. 허당이었다. 그래도 장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빚이 없는 상황이 되니 홀가분하다. A씨의 아내는 행복해졌다. 아르바이트생들이 감사편지와 케이크로 '백조'가 된 것을 축하해주는 깜짝파티를 열어줬다. 귀걸이 선물도 받았다. 한 여학생은 서울엄마로 생각하며 의지했다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어렵게 가게를 하면서도 누구를 속이거나 양심을 팔지 않는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더 이상 주말에 일하지 않아도 된다. 창업을 고려하는 친구 여러 명을 말렸다. "장사나 할까 해." 이렇게 말하면 100% 망할 사람이다. 당하지 않으려고 몇 달을 준비하고도 망했다. "창업은 한 마디로 맘고생 몸고생이야." "임대료, 재료비, 인건비, 전기료, 공과금 내고 나면 인건비도 건지기 힘들어." "수억원 투자해서 남들 재밌게 노는 빨간 날은 더 바삐 일하고, 알바보다 못한 수입을 손에 쥐면 어떤 느낌인지 아니?" 곧이 곧대로 듣는 것만은 아니다. '네가 무능해서 그렇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A씨에게 출판사 사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안된다'는 책은 팔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 '얼마버는 창업이야기' 식으로 써야 합니다. A부부도 이런 책 여러 권 읽었다. 발품도 많이 팔았다. 중년은 은퇴 후 실패하면 재기조차 힘들다. 실패가 자산인 젊은이와는 다르다. A씨는 생각한다. 책이 아니면 말로라도 말리고 다녀야지. 세종=최창환 대기자 choiasia@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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