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끝까지 간다' 포스터
올 여름 4대영화(명량, 군도, 해적, 해무)를 모두 즐긴 분이라면,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맛본 사람이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하지만 지난 5월에 개봉한 ‘끝까지 간다’를 보지 않았다면 더욱 행복한 사람이다. 해방 이래 ‘이야기 빈곤국가’가 되어버린 이 나라가, 헐리우드 키드가 되어 열심히 영화관을 쫓아다닌 결과가 어디까지 왔는지 유쾌하게 즐길 기회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끝까지 간다’가 한국 영화의 스토리텔링 실력의 최고봉이라고는 감히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하나의 절정(絶頂)에 이른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작품이고, 감독과 배우의 무명세(無名稅, 유명세의 반댓말이다) 탓에 오직 입소문만으로 300만명이 찾아가서 본 흥행작이다. 이 영화를 만든 김성훈감독이 갑자기 궁금해져서 찾아보니 1971년생 강릉 사람으로 ‘오 해피데이’(2003, 조감독), ‘그놈은 멋있었다’(2004, 조연출),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 미치는 영향’(2006)을 만들었던 분이다. 이 영화는 범죄 스릴러물이라 할 수 있지만, 잔혹한 폭력이나 경쟁처럼 쏟아내는 거친 쌍욕이나 무고한 인류를 상대로 한 도박이나 대담무쌍한 영웅이나 눅눅한 미녀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팽팽한 긴장이 정말 끝까지 간다. 그냥 끝까지 갈 뿐 아니라,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그 현기증을 즐긴다. 영화의 자신감은 한땀 한땀 수놓은 듯한 정교한 스토리에서 나오는 듯 하다. 익숙한 모티프들을 다른 방식으로 연결하여 새로움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유머와 페이소스를 양념처럼 쳤다.
영화 '끝까지 간다'의 주연 이선균(고건수 역)과 조진웅(박창민 역)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조연은 누구일까. 박창민경위를 맡은 조진웅을 떠올리겠지만, 나는 시체로만 나오는 이광민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체연기를 맡은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져서 찾아보았으나 알기 어렵다. 혹시 누구라도 이 멋진 출연자를 안다면 알려주기 바란다. 신문사에서는 시체와 시신을 구분해 쓴다. 시체는 대개 인간을 제외한 동물에게 쓰고, 인간에겐 시신이라고 한다. 시신이란 말에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경이 살짝 들어가 있다. 하지만 저 이광민의 주검을 굳이 시신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으리라. 시체라는 뉘앙스에 담긴 객관적인 ‘죽은 몸뚱이’만으로 의미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광민이 부각되는 까닭은 생전의 행적이나 사인(死因)을 둘러싼 비밀 때문만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시체 그 자체가 움직이며 스토리를 끌어간다. 이것이 이 영화의 묘미다.삶이 기구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시체의 팔자가 기구한 것은 그리 많이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시체 이광민이 말하는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라.“나는 어느 날 밤에 가슴에 총을 두 발 맞았습죠. 그 총 쏜 자는 나와 동업하던 부패한 경찰이었는데 내가 쓰러지자 내 몸에 있는 뭔가를 빼내가려고 다가오고 있었죠. 그런데 검은 로체 자동차가 달려와서 길에 쓰러진 나를 받은 것이었죠. 그 차가 그냥 달렸으면 그럴 일도 없었는데, 내가 아끼던 개가 쫄래쫄래 주인이 쓰러진 쪽으로 다가오는 바람에 차가 개를 피하려다 대신 나를 치게 된 거죠. 여하튼 차 주인은 형사였는데 나를 치고난 다음에, 갑자기 경찰 음주 단속차가 다가오는 바람에 나를 부랴부랴 트렁크에 실었죠. 그리고는 경찰들과 실랑이를 한참 벌이다가, 겨우 장례식장으로 가더군요.” “그때까지도 그냥 트렁크에 있었는데, 갑자기 로체 주인(고건수 형사)이 나를 빼내서 병원의 환기구 통로로 집어넣었습죠. 알고 보니, 이 사람도 약간 썩은 형사였는데 금품을 받았다가 감찰에 걸려서 곤경에 처한 상황이더군요. 그 감찰반이 경찰서에서 물증을 잡은 뒤, 모친상을 치르고 있는 이 형사를 추가조사하기 위해 장례식장으로 오는 모양이더군요. 이들이 자동차를 조사할 가능성이 커지니(경찰 동료가 전화를 해서 귀띔을 해줬죠) 급해진 이 사람이 트렁크에 있던 시체를 빼내 환기구로 넣은 거죠. 그 구멍이 너무 좁아 사람이 정상적으로 통과할 수 없는 긴 통로였는데, 이 사람은 나를 넣은 포대기를 줄로 묶더군요. 정말 경찰은 경찰이었습니다. 자기 딸이 가지고 놀던 리모컨 조종 인형을 이용하더군요. 내 시체에 줄을 묶어 다시 인형의 몸에 묶은 뒤 리모컨을 이용해 그의 어머니의 관이 있는 영구실 쪽으로 줄을 넘기더군요. 여하튼 그런 기발한 과정을 겪으면서 내 시체는 그의 어머니 시신 위에 얹혔습니다. 말하자면 시신에 편승한 시체가 된 거죠. 그래도 여인인지라 나로서는 아주 나쁜 상황은 아니었죠. 그런데 내 옷에 들어있던 휴대폰이 아직 배터리가 나가지 않아 계속 울려대는 거예요. 관짝 속에서 그게 자꾸 울리니 고건수는 정말 땀을 뺐죠.”“어쨌거나 나는 한 여인과 함께 밤을 보낸 뒤 이튿날 산으로 옮겨져 파묻혔죠. 관을 옮기는 차에서는 아직도 휴대폰 소리가 울렸고, 운구하는 사람들은 관이 왜 이렇게 무겁냐고 투덜댔죠. 나중에 고건수는 나를 두어번 찾아왔죠. 아마도 나를 찾아내라고 협박하는 자가 있었을 겁니다. 내가 지닌 열쇠가 필요했던 박창민 경위죠. 귀중한 것은 몸에 지니고 다니는 내 습관을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죠. 그런데 고건수는 박창민이 왜 자꾸 내 시체를 내놓으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죠. 그래서 그는 무덤으로 찾아옵니다. 아마도 관 속에서 울렸던 휴대폰 벨소리가 생각났겠죠. 그는 그때 관을 파내 나를 꺼냈죠. 휴대폰을 찾아내더군요. 그때 나는 가슴에 있는 총상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차에 치어 죽은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전에 죽어있었던 시체임을 알게된 거죠. 내가 아니었다면 박창민이 나를 죽인 사실을 어떻게 알아냈겠습니까? 그 뒤에 내가 은신해 살던 곳으로 가져가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했을 겁니다. 그때 나와 같이 동업하던 고향선배가 전화를 했을 것이고, 고형사는 잽싸게 그를 찾아내 나를 둘러싼 사건의 전말을 캐냈을 겁니다. 그리고는 다시 내 시체를 찾아와 깊은 곳에 들어있던 열쇠를 가져갑니다. 박창민이 그렇게 찾고 있던 그 열쇠 말입니다. 그는 또 나의 개 집을 뒤졌을 것이고, 개가 물고간 내 지갑을 봤겠죠. 지갑 안에는 명함 따위가 있었고... 아마 ‘돼지금고’ 명함도 있었을 거예요.”“마침내 고건수는 박창민의 비밀을 모두 알았지만,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 내 시체를 돌려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순순히 돌려줄 생각은 없었죠. 실탄을 장전한 총을 준비했고, 또 내 시체에 경찰이 새 청장 앞에서 자랑스럽게 폭발력을 시연했던 그 폭탄을 장치합니다. 두 사람이 저수지 둑길에서 만났죠. 고건수는 나를 박창민에게 건네줍니다. 그 과정에서 고건수는 품에 있던 권총을 빼앗기죠. 그리고 내 시체 꾸러미에 금속탐지기를 들이대며 검사를 했는데 폭탄을 숨긴 곳에서 삐익 소리가 나자, 박창민은 열쇠에서 나는 소리인줄 알고 ‘멀쩡히 잘 있네’하면서 흐뭇해하더군요. 시체를 건네받은 뒤 박창민이 그를 죽이려 했죠. 첫 탄은 공포탄. 둘째 총알을 겨누자 고건수는 내가 죽으면 박창민이 저지른 악행 일체를 낱낱이 기록한 메일이 경찰서에 도착하게 돼있다고 말하면서 죽일테면 죽여보라고 대들더군요. 박창민이 고건수를 죽이지 못하고, 차를 몰고 돌아갑니다. 고건수는 리모컨을 누르고, 차는 내 시체와 함께 폭발해서 저수지 속으로 잠수합니다. 내 연기는 여기까지였죠. 박창민과 함께 물 속으로 사라지는 것.”
영화 '끝까지 간다'의 한 장면
이 영화는 물의 이미지가 풍부하다. 고건수형사는 어머니 상중에 경찰서에 감찰반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물’을 먹었다. 동료들은 혼자만 돈받아먹은 덤터기를 쓰라고 했고 그는 분개했다. 나중에 사건이 모두 밝혀진 뒤에도 경찰 전체가 욕먹는 것을 두려워한 윗분이 고건수를 다시 ‘물’ 먹인다. 중간에 박창민이 나타나 화장실서 고건수와 싸우는 장면에서 박은 고의 머리를 변기통 속에 처박고 물을 먹여 굴복시킨다. 박창민이 야쿠자와 마약거래를 놓고 협상하는 것도 욕조에서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따낸 어마어마한 돈을, 시체가 된 이광민에게 ‘물’ 먹는 바람에 잃게 된다. 저수지 장면은 고건수가 박창민을 물 먹이는 장면이다. 시체에 열쇠 대신 폭탄을 박아놓아 그를 속였고, 그 폭탄을 터뜨려 차와 함께 통째로 저수지 속으로 처박히도록 했다. 박창민과 이광민, 둘이 동시에 물을 먹게된 셈이다. 그리고 고건수는 돌아와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잠수하며 이 악몽 전부를 씻어내려 한다. 그때 박창민이 죽지 않고 다시 살아 돌아와 고건수와 격투를 벌인다. 욕조에서 뒤엉킨 둘. 박이 샤워기의 줄을 고건수의 목에 감자, 고건수는 뜨거운 물을 틀어 박을 몰아낸다. 이후 두 사람은 쓰러진 책장 아래에 있는 권총을 발견하고 기어들어가 서로 먼저 차지하려 경쟁을 벌인다. 그때 방아쇠가 당겨지고 총알은 박창민을 뚫고 지나가 수족관 어항을 깨뜨린다. 어항에서 쏟아진 물과 박창민의 피가 뒤섞인다. 박이 최종적으로 물 먹는 장면이다. 영화 속에서 ‘물’은 죽음이며 경쟁에서의 치명적인 패배이다. 영화에선 개와 돼지가 나온다. 개는 봤지만 돼지는 어디 있느냐고? 돼지금고가 있지 않은가? 개는 한자로 견(犬)이다. 돼지는 돈(豚)이다. 견(犬)은 ‘본다’(見)는 뜻이고 돈(豚)은 ‘머니’이다. 이광민의 개는 박창민이 총격을 목격했고, 고건수의 차 사고와 뺑소니를 목격했다. 이 동물은 CCTV에도 등장하고, 고건수에게 이광민의 지갑을 건네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물론 개가 어떤 의지를 지니고 그런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견자(見者, 목격자)가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박창민은 고건수의 사고와 시체 유기를 알고 있다고 하지만, 개는 박창민의 살인까지 이미 알고 있는 존재였다. 박창민은 자신이 본 것(見)을 이용해 끊임없이 고건수를 협박한다. 돼지금고는 이 모든 사건의 열쇠를 쥔 ‘욕망’의 근원이다. 고건수가 끝까지 가서 이른 곳은 바로 저 돼지 앞이었다. 이광민의 개와 맞먹는 중요한 견자가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CCTV다. 영안실에서 고건수는 헬륨풍선을 이용해 CCTV를 막아놓고 시체 바꿔치기를 감행한다. 또, 자동차 사고 현장의 목격자 또한 CCTV였다. 그 눈은, 로체 자동차와 앞번호 8을 밝혀낸다.우연일까, 세 명의 ‘민’이 등장한다. 시체 이광민과 경위 박창민, 그리고 고건수의 딸 민아. 이 세명은 고건수형사를 둘러싼 아주 중요한 조연들이다. 고건수에게 ‘민아’는 그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존재이다. 박창민에게 이광민은 또한 그를 움직이게 하는 핵심 동인이다. 이광민은 열쇠를 품에 지니고 있었고 죽어서까지 박창민을 피해다녔다. 열쇠와 돼지금고는 시체 이광민의 아바타와도 같은 존재다. 박창민은 민아로 협박하고, 고건수는 이광민으로 협박하고, 시체 이광민은 박창민을 움직여 고건수를 협박한다. 딸 민아는 세 개의 중요한 인형을 지녔다. 첫째 인형은 시체를 움직이는데 쓰인 ‘낮은 포복’인형이다. 둘째 인형은 앞의 것을 잃어버린 뒤 장례식장 편의점에서 샀다는 자동차인형이다. 이 자동차는 고건수의 차 사고를 연상시켜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세 번째 인형은 박창민이 고건수를 협박하기 위해 그의 집에 들러 민아에게 사준 인형이다. 민아의 인형이 리모컨으로 움직이는 물건들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인간의 의지를 다른 대리물에 옮기는 ‘리모컨’은 이 영화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다. 이광민은 시체이지만 도장이라는 리모컨을 가지고 인간들을 움직인다. 딸은 아버지를 사랑과 관심이라는 리모컨으로 움직인다. 박창민은 협박으로 고건수를 움직여 시체가 돌아오게 한다. 고건수는 폭탄의 리모컨을 작동해 박창민을 공격한다.
영화 '끝까지 간다'의 한 장면
영화에는 역설과 풍자가 곳곳에 보석처럼 들어박혀 블랙유머 코드를 이룬다. 어머니의 관 속에 자기가 치어죽인 남자를 함께 넣는 상황이 가장 강렬하다. 관은 세상 사람들의 추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다. 감독은 이 상황을 음미하기 위해 족집게 점쟁이 이야기를 넣었다. 고건수의 여동생이 “글세, 엄마가 남자가 있대. 지금도 같이 있대.”라고 말하는 장면이 통렬한 풍자이다. 그의 남편인 영철(고건수의 매제)이 이 상황을 로맨스로 이해하고 ‘우와, 어머니 멋지다’라고 감탄하는 장면도 그 유머의 연장이다. 고건수가 급히 관의 못을 다시 박아넣다가 나무못의 대가리가 반쪽 깨지는 것도 상황이 탄로날 수 있는 긴박감을 자아내는 요소이지만, 감독이 치밀하게 인간의 심리를 읽어내지 않으면 넣기 어려운 장치이다. 그 영안실을 관리하는 사람은, 저 깨진 못의 의미를 몰랐던 게 아니라, ‘효자라서 어머니 얼굴을 한번 더 보고싶어서 열어본 것’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박창민이 시체를 건네받고 떠나면서, 고건수에게 “요 앞에 맛집 해장국집이 있는데...”하며 같이 먹자고 제안하는 것도 영화적 유머다. “그 집 선지가...”라고 말할 때 고건수가 “안 먹어”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이후에 벌어질 일이 뭔지를 암시한다. 선지는 피를 말한다. 해장국에 빠져있는 피와, 박창민이 저수지에 빠져 흘리는 피와 정교하게 맞아 떨어진다. 민아의 인형이 자동차로 바뀌었을 때, 여동생이 “아 글쎄, 어떤 미친 놈이 아이 인형을 훔쳐갔지 뭐야”라고 말하는 것도, 여동생은 그냥 뱉은 말이지만 관객에게 기묘한 암시를 준다. 고건수가 행하고 있는 일이 미친 짓이라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창민과 고건수의 화장실 격투 때, 등 뒤에 용문신까지 있는 야쿠자풍의 박창민이 몇 대 맞아주면서 아픈 시늉을 하는 것도, 고건수는 모르게 하고 관객만 알게 함으로써 효과를 자아내는 일종의 유머가 담긴 기법이다. 고건수가 뒤에서 추격하는 가운데, 택시에 앉은 박창민이 기사에게 1초당 만원씩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파란 불에서 택시를 도로 한복판에 세워놓는 게임도 보기드문 익살이다. 또 최형사와 고건수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박창민이 전화를 걸어 “차에서 나와 전화 받아. 최형사한테 민폐 안끼치려면 빨리 나와.”라고 말하는 것도 블랙유머다. ‘민폐 안끼친다는 것’이 바로 혼자 죽는데 따라죽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저 대사를 들을 때만 해도, 고건수에게 가해질 공격이 최형사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말로 읽힌다. 하지만 곧 있을 최형사의 죽음으로 그 말은 역설이 된다. 저수지에서 살아돌아온 박창민이 “너 때문에 잠수 기록을 갱신했다”는 것도 웬만해선 나올 수 없는 너스레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고건수가 들고온 비교적 작은 가방을 본 돼지금고 주인이 “열쇠 주인한테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나 보네”라고 말하는 것도, 이후의 장면을 본 관객들에게 고개 끄덕이게 하는 섬세한 장치이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이만큼 풍부한 유머센스를 적재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 히스테리컬하면서도 집요한 고건수형사의 연기를 해낸 이선균도 볼만하지만, 이 영화가 낳은 스타는 박창민경위 역의 조진웅일 것이다. 조진웅은 영화 ‘명량’에 출연해 장수 와키자카 연기를 했고 또 ‘군도’에도 나와 양반 출신의 브레인도둑 태기 역을 맡아, 대흥행 행진에 자주 얼굴과 이름을 비치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끝까지 간다’에 나온 역할이 가장 인상적일 것이다. 듬직한 덩치에 코트 깃을 세운 냉혈한을 그는 천연덕스럽고 넉살좋게 풀어냈다.
영화 '끝까지 간다'의 한 장면
영화는 부패한 경찰들을 앞세워, 부패하지 않은 시체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한다. 가장 부패한 경찰 박창민이 아직 부패하지 않은 시체 이광민을 찾으려고 애쓰는 일이 이야기의 골조를 이룬다. 그러나 고건수가 관 속에 시체를 숨겼듯, 경찰 상부는 그 내부의 부패를 숨기고 영원히 입을 닫으라고 명하고 있으니, 영화 전체가 하나의 패러독스이다. 이 영화를 요모조모 뜯어보는 일은 영화를 보는 것 이상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그만큼, 곱씹을수록 행간이 다채롭고 풍성하다는 얘기가 아닐까. 어떻게 보셨는가, 개와 돼지 사이 죽기살기로 뛰는 인간들을.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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