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먹는 샘물 공장에서는 먹는 샘물에 탄산만 첨가하면 제조가 가능한 '탄산수'를 만들 수 없어 따로 공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용자 식별정보 등이 저장된 장치인 유심(USIM)은 '삽입'만이 가능하고 '부착'은 불가능하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건물의 경우 겨울에 난방온도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에어컨을 틀어야 한다. 전자기록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도 서류는 출력이나 스캔 후 종이로 보관해야 한다. 공장 소음이 도서관에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보다 크면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이는 지난 3월 열렸던 대통령 주재 규제개혁장관회의 이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회원사로부터 수집한 총 1300여건의 규제개혁 과제들 중 일부다. 전경련은 이 같은 과제들을 한국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규제개혁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이를 검토한 뒤 총 628건을 추려 4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관련 부처에 전달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번에 문제가 된 규제들은 신사업 창출을 가로막거나 기술 및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했고 국제 기준에도 없는 '갈라파고스 규제'라고 전경련 측은 설명했다. 이 밖에 수단과 목적이 바뀌었거나 행정편의적, 차별적 규제들도 존재했으며 안전을 위한다는 규제가 오히려 안전사고 발생을 우려하게 만드는 것도 있었다.일례로 탄산수는 먹는 샘물 공장에서 제조할 수 없다는 규제로 인해 탄산수 제조를 위해서는 공장 외부에 따로 음료 제조공장을 세워야 한다. 반면 미국, 중국, 일본, 호주, 동남아시아권에서는 먹는 샘물 공장에서 탄산수 혼합생산이 가능하다. 현재 국내 탄산수 시장은 2010년 75억원에서 지난해 195억원으로 3년 만에 2.6배 커졌다. 또 올해는 지난해보다 5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같은 시장 성장에 먹는 샘물 공장을 가진 A사는 탄산수 생산을 계획했으나, 음료 제조공장을 따로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문제로 탄산수 시장에 뛰어들지 못하는 상황이다.기술 및 시대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규제도 있다. 전기통신설비의 상호접속기준에 따르면 유심은 이용자 식별정보 등이 저장된 장치로 통신단말기에 '삽입'해 사용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부착 등 다른 방법은 불가능해 B사는 착용 가능한(웨어러블) 기기 디자인 개발에 제약을 받고 있다. 스마트 시계, 스마트 안경 등 웨어러블 기기에 유심을 카드 형태로 삽입하게 되면 소형화, 경량화된 디자인을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치아미백제가 의약품으로 분류되는 사례도 존재한다. 국제 기준보다 강한 '갈라파고스 규제'다.치아미백제의 경우 국내에서는 과산화수소 함량이 3%를 초과하면 의약품으로 관리된다. 이 같은 치아미백제 과산화수소 함량 제한 규제로 인해 국내 기업들은 국내외 소비자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는 기술개발에 애로를 겪고 있다. 과산화수소 함량이 3%를 초과하는 치아미백제 생산을 원하는 기업은 의약품업을 등록해야 하는데 의약품 제조설비구비 등 그 절차와 기준이 매우 까다롭다. 의약품업 등록이 어렵기 때문에 기업은 과산화수소 함량이 3%를 초과하는 치아미백제 생산이 사실상 어렵다. 반면 미국, 캐나다 등 해외 국가들에서는 고함량 과산화수소 함유 치아미백제를 화장품이나 공산품으로 관리하고 있고 과산화수소 함량 규제가 없다. 규제의 수단과 목적이 바뀌어 효율을 떨어뜨리는 사례도 있다. 에너지이용 합리화법에 따라 전력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다소비 건물은 하절기, 동절기에 냉난방 온도를 제한받고 있다. 그러나 온도제한이 오히려 전력 사용을 부추기는 경우가 있다. 인텔리전트나 커튼월 빌딩 같은 대형 건물의 경우 단열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별도의 난방용 에너지 사용 없이 복사열, 자체발열만으로도 제한온도보다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겨울에 난방온도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에어컨을 틀어야 한다. 즉, 전력을 더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공장 주변 소음을 도서관이나 숲속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는 황당한 규제도 나타났다.경기도 소재 C기업은 공장 준공 이후 해당지역이 녹지지역으로 지정돼 신증설 면적이 녹지지역 지정 당시 연면적의 2분의 1 이내로 제한받는 등 생산활동 지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주변 택지에 아파트가 들어선 이후 지자체는 공장 소음을 40dB로 유지하지 않으면 조업중단 명령을 내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40dB는 조용한 숲속 수준으로 도서관에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 정도다. 반면 C기업 공장 주변 소음은 53dB로 양호한 수준이다. C기업은 이미 시설 개선을 위해 220여억원을 투입했다. 고용이 전경련 규제개혁팀장은 "그동안 기업들은 규제개선 과제를 내더라도 개선되는 것이 많지 않아 건의에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규제개혁장관회의 이후 달라졌다"며 "기업별로 수십건에서 100건이 넘는 과제들을 건의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고, 최고경영자(CEO)급에서 관심을 갖고 전사적으로 과제발굴을 독려하는 기업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고 팀장은 "대통령이 규제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 "'이번에야말로 뭔가 되나 보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만큼 기업활동을 저해하는 불합리한 규제들이 조속히 개선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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