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블로그]대가를 치러야 움직이는 자들

김민진 산업부 차장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이 기업 경영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기업 최고경영자가 화재대피 훈련현장을 직접 찾아 고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길 것을 강조하면서 직접 훈련을 체험하기도 하고, 사업장이나 건설현장을 찾아 수시로 현장상황을 체크하겠다며 공을 들이고 있지만 현장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고의 대응방식을 보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든다. 정부나 기업들이 선언적으로 안전을 부르짖을 뿐 막상 사건이 벌어졌을 때 대응방식이나 후속조치 등의 태도가 바로 그 증거다. 19년 전 서초동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최근 새삼스레 매스컴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지난 29일 발생한 현대백화점 천호점 1층 천장 마감재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1995년 6월29일 벌어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500명 이상이 사망하고 930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등 6.25전쟁 이후 발생한 국내 최대 규모의 재난사고였지만 우리 기억속에서는 흐릿해진 지 오래다. 지난 93년 서해훼리호 전복 사고, 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에 이어 3년 연속 발생한 대형 재난사고로 무수한 인명이 사망하자 당시 민심은 흉흉해졌다. 20여년 전에 연이어 벌어진 3건의 대형 참사의 공통점은 모두 '인재'라는 점이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설계ㆍ시공ㆍ유지관리의 부실에 따른 예고된 참사였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많은 이들의 가슴을 치게 했다. 삼풍백화점은 애초 바로 옆 대형 아파트단지의 대단지 상가로 설계됐지만 백화점으로 용도변경돼 완공됐다. 이후 무리한 확장공사가 수시로 진행됐다. 사고 수개월 전부터 균열 등 붕괴 조짐이 있었지만 경영진은 영업을 계속하면서 보수공사를 하기로 했다. 사고 당시 백화점 경영진과 간부들은 고객들을 버려두고 자신들만 대피했다. 두달이 넘도록 전국민의 가슴을 먹먹하게 울리는 세월호 참사의 불행한 공식은 20여년 전 대형 재난사고와 닮아있다. 구조나 대응체계에 있어서는 어쩌면 당시보다 더 후진적인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현대백화점 입장에서는 천장에 붙은 석고보드 몇장 떨어진 것을 두고 '천장 붕괴'라고 쓰는 언론이 내심 불편했겠지만, 있어서는 안될 사고로 부상자까지 발생한 상황에서 영업을 강행한 것은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렵다.  금융기관이나 카드사, 통신회사 등에서 해킹이나 허술한 정보관리 체계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하면 당시 엄청난 사회적 이슈가 된다. 그로 인해 새로운 규제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제도를 정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슈가 완전히 잊혀질 때쯤 내려지는 솜방망이식 행정처분을 보면 이번에도 결국 용두사미로 끝나나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재난사고건, 개인정보 유출이건 사고 발행 이후 재발방지를 위해 새로운 규제나 제도를 만들 필요는 없다. 사고에 따른 손해와 사회적 비용, 국민적 스트레스에 대한 막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게 한다면 이윤추구가 최대 목적인 기업들은 리스크 회피를 위해 보다 철저한 대비를 하지 않을까. 제도가 없어서 대형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책임을 지게 하면 된다.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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